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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文희상 鄭동영 평양行 ‘수학여행’ 아니다

입력 | 2005-05-24 03:56:00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평양에서 열릴 통일대축전에 여야 국회의원 20여 명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주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20만 t 비료지원’에 따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행 티켓을 얻어낸 점을 감안하면 이번 행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장 큰 남북 간 정치행사가 될 전망이다.

통일대축전은 본래 민간차원의 행사다. 그래서 북측은 차관급 회담에서 우리 쪽에 정부대표단 파견을 제안하며 성사 가능성을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는 후문이다. 마침 정 장관의 평양행에 대한 ‘의지’ 때문에 우리 측이 적극적으로 정부대표단 파견을 주장해 손쉽게 타결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집권여당 대표와 차기 대통령후보 유력자가 함께 참석함에 따라 이번 행사의 정치적 성격이 한층 짙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냉철하게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은 채 수학여행단 같은 흥분된 심리로 방북할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닥칠 우려가 있다.

문 의장은 어제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었고, 정당교류와 국회교류에 한몫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방북을) 승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얼마나 충족될지는 미지수다. 북측은 차관급 회담 후의 공동보도문에서도 비료지원 내용은 뺀 채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라는 표현을 멋대로 집어넣었다. 신뢰하기 어려운 대화상대임을 거듭 드러낸 것이다.

북측이 방북단의 흥분된 심리를 이용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 궁전 참배 등 무리한 일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막판까지 금수산 궁전 참배를 요구했다. 우리 측 참석자 가운데서 돌출적인 친북(親北) 언행이 나와 남-남 갈등이 재연되거나 북측이 ‘민족끼리’를 앞세워 정치적 선언 채택을 압박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북이 행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냉정한 계산과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