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하나로 천하를 호령했던 베이브 루스. 나이가 어느덧 불혹에 이른 1935년. 보스턴 브레이브스는 다시 한번 루스를 실망시킨다. 훗날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로 불린 사상 최악 징크스의 완결판이라고나 할까.
초창기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최고 명문이었지만 15년 전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뒤 한번도 우승컵을 안아 보지 못했던 보스턴으로선 그를 다시 모셔온 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리라.
하지만 ‘뒷간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달랐다. 부회장 직을 제시했던 루스와의 약속은 뒷전. 오로지 흥행에만 관심이 있었던 보스턴은 루스를 선수로 출전시켜 장사할 생각밖에 없었다.
이즈음 루스는 이미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느끼고 은퇴를 고려 중이었다. 외야 수비는 물론 타석에서 1루까지 달리는데도 숨이 가쁜 상태였다. 제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야구 선수의 40세는 당시로선 일반인의 고희쯤에 해당하는 나이.
하지만 루스는 자신이 언제 홈런을 쳐야 할지 아는 선수였다. 양키스 시절인 1932년 시카고 컵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친 ‘예고 홈런’처럼….
루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스탠드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루스는 보스턴 유니폼을 다시 입은 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복귀 첫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려 화답했다.
그러나 이후 루스의 성적이라곤 믿기 힘든 타율 1할대의 부진이 계속됐다. 무리를 해가며 혼신의 힘을 짜내던 루스에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라도 든 것일까.
개막 두 달쯤이 지난 5월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 평소 때와는 달리 매섭게 바람을 가르던 루스의 방망이는 담 너머로 무려 3개의 아치를 그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팬들을 절정에 치닫게 했다. 41년이 흐른 뒤 행크 애런(홈런 755개)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714개의 홈런 신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닷새 뒤 루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대결에서 3회 때 다리에 쥐가 나 교체됐고 이것이 그가 스코어보드에 이름을 올린 마지막 경기가 됐다.
한 시즌 10개 안팎만 치면 홈런왕이 됐던 시절에 1919년 29개 홈런에 이어 이듬해 54개의 홈런을 날렸던 전설의 강타자 루스. 왕좌에서 물러나는 순간까지 위엄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