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서울대교수
《정치사상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적 전통은 이 땅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가. 동아일보는 창간 85주년을 기념해 성균관대 사회과학연구소, 한림대 사회조사연구소,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의 자유주의 전통’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2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 명지빌딩 20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한다. 모두 7편이 발표될 이번 학술대회 논문 중에서 일제강점기 자유주의를 위한 노력을 연구한 김용직(金容稙·정치외교사) 성신여대 교수와 민주화 성취 이후 자유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박효종(朴孝鍾·정치학) 서울대 교수의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박효종 교수 “盧-부시 성향 달라 韓美긴장 조성”▼
▽민주화 이후의 자유주의(박효종 교수)=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정치적 도덕주의’에 사로잡혀 자유주의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정치적 도덕주의는 정치주도세력이 시민을 훈육하고 계몽하는 어젠다에 주력하는 것을 말한다.
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이 정치권력에 본격 진입하면서 ‘민주화’와 ‘개혁정치’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인 영역에 개입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차별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나 성매매금지법 도입, 대학총장 선거에의 개입이 그같은 예라는 것.
그는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진보주의자들이 정의를 ‘항로를 제시하는 북극성’으로 여기지 않고 아예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특히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인 것을 모두 이기적인 것으로 환원, 강등시키면서 정부에 대한 의존을 권장하는 경향’을 정치적 도덕주의의 한 특징으로 지적했다. 이는 정부가 경제, 의료, 교육,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계몽적 역할을 자임하고 개입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박 교수는 이를 ‘사회영역의 식민지화’ 또는 ‘일상적인 것의 정치화’라고 불렀다.
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정치가 공동체의 자율성을 빼앗고 통합보다 분열을 낳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앞으로 정치는 ‘합의의 규칙’도 아니고 ‘정의의 규칙’도 아닌 ‘평화의 원칙’을 중시하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잠정 타협)의 정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직 교수 “한국 자유주의는 1920년대 동아일보에 뿌리”▼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식민지 시대 한국의 자유주의(김용직 교수)=김 교수는 한국의 자유주의 전통은 광복 이후 성립된 것이 아니라 1920년대 초 동아일보가 중심이 된 민족언론의 자유주의운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20년 창간된 동아일보가 제창한 3대 기본노선인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 중에서 민주주의는 그 내용상 자유주의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창간호인 4월 1일자 사설 ‘주지를 선명하노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국내정치에 처하여는 자유주의”라고 밝힌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김 교수는 “동아일보의 사설은 입헌정치 지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허용 촉구, 법치주의 확립을 강조했다”며 “동아일보가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혁신·진보 노선을 견지했다”고 분석했다.
즉 △전통적 가족제도의 결함을 비판하며 신식 연애결혼과 핵가족제도를 권유하고 △인습적인 허례 타파를 위해 노년보다 청년층을 앞세우고 △양반을 대신해 상공인층을 평등사회를 이끌 핵심계층으로 중시하고 △소작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 보호에 나서고 △자유와 평등의식의 확산을 위한 사학(私學) 건립을 지지한 점 등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
김 교수는 동아일보가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는 보호주의나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활동은 일제의 지배가 조선에 근대화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일제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근대화에 대한 독자적 기반과 사상을 갖춰갔음을 보여 준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