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축구대회를 공동 개최한 2002년 1월, 필자의 집안에는 긴박한 사태가 벌어졌다. C형간염으로 오랫동안 앓아 온 부친(고노 요헤이·河野洋平·현 중의원 의장)의 건강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의사는 앞으로 남은 삶이 반년뿐이라고 통고했다.
부친을 살리려면 건강한 간을 이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식을 목적으로 뇌사자의 간이 제공되는 경우는 1년에 2, 3건에 불과하다. 필자는 각오를 굳히고 간의 3분의 1을 부친에게 이식했다.
일본에서 뇌사자의 장기가 제공되는 사례는 매우 적다. 1997년에 장기이식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뇌사자의 장기 제공은 모두 합쳐 40건이 채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심각한 간 질환으로 고생하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건강한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 주는 생체 간이식 수술이 연간 500건이나 이뤄진다.
그래도 간은 반년만 지나면 다시 커지기 때문에 괜찮지만 일단 잘라내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 허파, 췌장, 작은창자 등도 가족이 떼어 주는 경우가 많다. 장기를 제공한 가족의 허파, 췌장, 작은창자 등은 평생 원상 복구가 불가능한데도….
일본엔 ‘내가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는 장기를 제공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한 사람에 한해서만 장기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률이 있다.
하지만 1억2000만 명의 일본인 가운데 평소 자신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염두에 두는 이는 거의 없다.
또 뇌사라는 게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아는 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1%만이 장기기증 문서에 서명했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약 3000명의 뇌사자가 생겨나지만 그중 2970명은 서명이 없는 탓에 법률적으로 장기 제공이 금지된다. 남은 30명 중에서 생체 특성 등의 조건이 맞는 몇 명만이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법을 고쳐 장기 제공을 거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사람을 제외하고는 뇌사 상태가 됐을 때 본인의 의사 또는 본인의 의사가 불명확할 경우 가족의 뜻으로 장기를 제공할 수 있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장기 제공과 관련해 다른 나라에 있는 것과 같은 규정을 일본에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국회에서는 모든 표결 안건에 대해 각 정당이 찬성이나 반대 방침을 정하면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결정에 따르는 게 당연시돼 왔다. 즉 민주집정제(民主執政制)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장기이식법은 ‘뇌사를 죽음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어서 대응이 쉽지 않다.
각 개인의 생사관 및 종교관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당 수뇌부가 일률적으로 방침을 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법안에 한해서는 정당이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 각자가 찬성과 반대를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해 본회의에서 투표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법안은 일본의 의료분야뿐 아니라 일본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일본 국회에서 정당이 계속 강력한 힘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의원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일본의 의원들은 지금 그 분기점에 서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중의원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