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중정 요원들에게 피살된 것으로 조사된 데 대해 프랑스 정부는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지난주 한국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중간 조사결과를 알려주면서 사과의 뜻을 전했을 때 “과거사 진상규명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는 한국 정부의 조치를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프랑스 측은 “아직 조사가 끝난 게 아니고, 이미 26년 전에 벌어진 일인 데다 당시의 박정희(朴正熙) 정부와 현 정부는 성격이 다른 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 그러나 “상황의 진전을 더 검토해 보겠다”며 최종적인 입장 발표는 유보했다.
프랑스 현지 언론도 국가정보원의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사실 보도만 하고 있을 뿐 논평을 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프랑스 내의 여론이 악화된다면 프랑스 정부가 ‘주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외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프랑스로서는 자국 내에서 중대한 범죄행위가 벌어진 만큼 사법관할권 행사에 나설 수 있고, 사건 조사를 위해 범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프랑스의 법적 시효는 10년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사과의 뜻을 전한 만큼 197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벌어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납치사건과는 다르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 때는 일본 정부가 범인으로 지목한 주일본 대사관 정보요원의 신병인도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해 외교 마찰을 빚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국정원“부일장학회 강제헌납 기부승낙서 변조”▼
국가에 헌납된 것인지, 정부가 강제로 뺏은 것인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제 헌납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6일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김지태(金智泰) 씨가 1962년 당시 5·16장학회에 낸 기부승낙서가 변조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위 오충일(吳忠一) 민간위원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 결과 6월 20일로 돼 있던 승낙서의 자진 헌납일이 6월 30일로 고쳐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는 김 씨가 구속돼 있던 20일에 기부를 강요받았다는 의혹이 나오지 않도록 날짜를 위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쟁점 중 하나를 푼 셈이다.
또 기부승낙서에 7번 나오는 ‘김지태’라는 서명은 서로 다른 3명의 필체로 나타났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이 역시 김 씨가 사실상 장학회를 강탈당했다는 유가족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이사장직을 맡았던 정수장학회의 탄생 배경이 ‘군부세력에 의한 강탈’이었음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중국을 방문 중인 박 대표는 이날 “부일장학회 직인 위조 의혹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이사장직을 내놓은 것으로 정수장학회는 정리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글쎄요”라고 답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베이징=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