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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권총 김형욱 머리에 겨누고 7발 쏴

입력 | 2005-05-27 03:05:00


《사건 발생 26년이 지나도록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던 ‘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이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중간발표를 통해 윤곽을 드러냈다. 그동안 김 부장의 실종과 관련해 △파리 근교에서 살해 후 양계장 분쇄기로 처리 △파리에서 살해 후 센 강에 유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종 △서울로 납치 후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 등 각종 미확인 설이 나돌았다. 진실위 발표는 이 같은 설을 뒤집는 것. 발표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준비=1979년 9월 말 김재규(金載圭) 당시 중정부장은 김형욱이 프랑스로 갈 것이라는 정보를 접한다. 김 부장은 즉각 주 프랑스 중정 책임자였던 이상열(李相悅) 공사에게 살해를 지시했다.

이에 이 공사는 파리에 머물고 있던 5, 6명의 중정 연수생을 자택으로 불렀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어”라고 젊은 혈기를 부추기며 살해 가담자를 물색한다.

10월 1일 비밀리에 귀국한 이 공사는 김 부장으로부터 살해 도구로 소음기가 달린 구소련제 권총과 독침을 받는다. 파리에 돌아온 이 공사는 연수생 중 자신이 점찍은 신현진(가명)과 이만수(가명)를 불러내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권총과 독침을 건넸다. 김형욱이 해외에 1500만∼2000만 달러를 빼돌리고 도박에 탐닉하며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행동을 한 데 대해 당시 중정 직원들은 그를 ‘역적’으로 여겼다.

며칠 뒤 이 공사는 신현진을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푸케 카페로 불러 다시 살해를 지시했고, 신현진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신현진은 가까이 지내던 동유럽 출신 2명에게 10만 달러를 제시하고 김형욱 살해를 청부했다.

▽살해=1979년 10월 1일 혼자 파리에 도착한 김형욱은 카지노 등에서 돈을 탕진한 듯 7일 이 공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중정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를 건 것은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 때문. 국가정보원 김만복(金萬福) 기획조정실장은 “이 공사가 군에 몸담았던 시절인 1963년 ‘원충연 대령 반혁명사건’ 처리 과정에서 맺은 인연으로 중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김형욱의 후원 아래 승승장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살해사건 전 이 공사는 김형욱과 함께 파리 시내 카페와 카지노에 가기도 했다.

이 공사는 김형욱의 전화를 받은 뒤 신현진에게 연락해 “두 시간 뒤 샹젤리제 거리로 김형욱을 오라고 했다. 오늘 처치해야 하니 일꾼들을 어서 부르게”라고 지시했다.

이 공사와 신현진, 외국인 2명은 샹젤리제 거리의 리도 극장 앞에서 카지노에서 며칠 밤을 새운 듯 초췌한 모습에 취기가 가시지 않은 김형욱을 이 공사의 관용차 ‘푸조 604’ 조수석에 태웠다. 이 공사는 ‘외국인들은 돈을 빌려줄 사람들’이라고 김형욱을 속이고 자리를 떴다.

차가 전조등을 밝힌 채 어둑어둑한 파리 외곽으로 빠져나갈 무렵 뒷좌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2명은 김형욱의 머리 뒷부분을 주먹으로 때려 실신시켰다.

관용차는 신현진 등이 미리 답사해 둔 인적이 드문 작은 숲에 도착했다. 신현진이 자동차 안에서 대기하는 동안 외국인들은 김형욱을 숲 속으로 끌고 가 소음기가 달린 구소련제 권총을 김형욱의 머리에 겨누고 7발을 발사했다.

범행 후 외국인들은 급한 마음에 김형욱의 시체를 낙엽으로만 덮었다. 그리고 김형욱의 버버리코트로 그의 여권과 지갑, 시계를 싸 벨트로 묶은 뒤 신현진에게 건넸다. 이들은 이만수가 기다리던 파리의 한 호텔로 돌아왔고, 신현진은 외국인 2명에게 10만 달러를 건네며 “내일 중으로 프랑스를 떠나라”고 말했다.

신현진은 김형욱의 시계를 센 강에 던졌다. 버버리코트와 벨트는 가위로 잘게 썰어 자신의 옛 하숙집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가=10월 10일 귀국한 신현진은 김재규 부장에게 ‘그림(살해경위)에 대해서는 신 군에게 들으십시오’라는 이 공사의 보고문을 건넸다. 김 부장은 “잘했어. 그런 놈을 그냥 놔두면 우리 조직은 뭐하는 곳이야”라고 흐뭇해하며 신현진과 이만수에게 각각 320만 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이어 김 부장은 신현진에게 “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는 게 어떤가. 내 직속기관이야”라며 즉석 발령을 냈다. 김 부장은 또 “앞으로 장가도 가려면 집이 있어야 겠구먼. 40∼50평이면 되겠나”라며 집 제공도 약속했다. 이만수도 ‘상당히 많은’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신현진은 중정을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뒀다. 이만수는 중정 간부까지 지낸 뒤 2, 3년 전 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풀리지 않은 의문…시체, 낙엽으로 덮었다?▼

‘김형욱 실종사건’에 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26일 발표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 진실위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살해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는 관련 자료 부재와 당사자들의 사망으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형욱 살해 후 허술한 시체 처리과정도 석연치 않다. 진실위는 “제3국인 2명이 도로에서 약 50m 떨어진 지점에서 땅을 파지 않은 채 두껍게 쌓여 있는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살해 현장에 이들 외국인과 함께 간 중앙정보부의 신현진이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김형욱을 살해한 외국인들로부터 김형욱을 쏜 권총을 분실했고 시체를 허술하게 처리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진실위가 김형욱 살해에 관해 전적으로 신현진의 진술에 의존한 점도 문제다. 신현진은 제3국인 2명에게 10만 달러를 준 부분에 대해 진술을 번복하는가 하면 시체 유기 장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회피했다.

사건관련자들도 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姜信玉) 변호사는 “변호과정에서 김 전 부장에게 김형욱 사건에 대해 아는 바 있느냐고 수차례 물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형욱의 맏며느리인 제니퍼 경옥 김(49) 씨도 “남편으로부터 아버님이 파리에서 살해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며 “조사가 정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