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한 장면. 중년의 할리우드 배우 해리스(빌 머레이)는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일본으로 오게 된 샬럿(스칼렛 조핸슨)을 우연히 만난다.
Harris: How long have you been married?
Charlotte: Two years.
Harris: Twenty-five long ones.
Charlotte: You are probably just having a mid-life crisis. Did you buy a Porsche yet?
Harris: I was thinking about buying a Porsche.
해리스: 결혼한 지 얼마나 됐죠?
샬럿: 2년요.
해리스: 난 장장 25년.
샬럿: 중년의 위기를 겪고 계시나 봐요. 포르셰는 사셨나요?
해리스: 한 대 살까 생각 중이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척하니 서로를 알아본다 했던가. 세상과의 소통 단절에 시달리는 샬럿은 같은 증상을 겪는 해리스의 공허함을 금방 눈치 챈다. 그리고 “You are probably just having a mid-life crisis(중년의 위기를 겪고 계시나 봐요)”라고 한다.
이어지는 질문이 독특하다. “Did you buy a Porsche yet?(포르셰는 사셨나요?)” 포르셰는 알다시피 스포츠카. 여기서 왜 갑자기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런데 해리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I was thinking about buying a Porsche(한 대 살까 생각 중이죠).” 해리스는 정말 포르셰를 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까? 그건 아니다. 샬럿의 농담 섞인 질문에 그도 농담으로 답한 것일 뿐.
도대체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와 포르셰는 어떤 관계일까?
미국에서는 Mid-life crisis를 겪는 남성들 중 젊음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에서 스포츠카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스포츠카는 혈기 왕성한 젊음을 상징하지 않는가. 그리고 미국 대중의 뇌리에는 포르셰가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인식되어 있다. ‘중년의 위기와 포르셰’, 사실 이것은 고정화된 이미지(stereotype)에 근거한 과장된 밀월관계라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mid-life crisis’ 하면 Porsche를 연상시켜 농담을 할 정도로 미국의 문화적 코드 중 하나로 이 둘의 관계는 끈끈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건 바로 한국어판 제목.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은 영화의 초점을 빗나가 있다.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번역에서 길을 잃다(Lost in Translation)’라는 원제목을 그대로 살린 시적 문구로는 ‘극장표가 좀 덜 팔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만하다. 그러나 제목을 바꾸면서 내용과 타이틀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졌다. 안타깝게도 한국어판 제목은 원제목 그대로 ‘lost in translation’ 즉 ‘번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아이러니라 해야 할지 우연의 일치라 해야 할지….
김태영 외화번역가·홍익대 교수 tae83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