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은 둥글다. 깨달음의 길도 둥글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1970년대 동국대 농구선수로 활약하다 ‘나’를 찾아 출가한 성국 스님. ‘동백꽃이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전북 고창군 선운사 도솔암의 주지 스님이다. 원주=이종승 기자
25일 오후 전국대학농구연맹전이 열린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 스님은 어김없이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성국(性國·50) 스님. 전북 고창군 선운사 도솔암 주지. 고창에서 혼자 차를 몰고 달려왔다. 고려대-한양대, 경희대-연세대가 맞붙는 단 2경기를 보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것.
○ 대학연맹전 보러 원주로 달려와
“농구와 깨달음의 길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농구는 팀워크가 생명이고 4쿼터 마지막 1, 2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만 깨치면(獨覺·독각) 안 됩니다. 중생과 더불어 가야지요. 또 한번 깨우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옷을 벗을 때까지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스님은 농구선수 출신이다. 홍익대부속중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홍익대부속고를 거쳐 동국대(74학번)에서 포인트 가드(신장 176cm)로 활약했다. 그 인연으로 스님은 현재 동국대 농구팀 총감독도 맡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총감독은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 최희암 감독과 선수시절 인연
동국대 농구팀 지휘자는 어디까지나 그가 최근 모셔온 최희암 감독이라는 것. 최 감독과는 선수 시절 맞상대로 경기장에서 인연을 맺었다. 나이도 같다. 최 감독은 연세대 출신. 다른 대학 출신의 최 감독을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것은 이례적이다.
“부처님 말씀 앞에선 누구나 똑같듯이 농구 앞에 그런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최 감독은 프로에서 실력이 입증된 명감독인데 못 모시는 게 한이었지요.”
○ 석박사 학위논문 주제도 농구
농구는 스님에게 화두다. 석사학위 논문도 농구에 대해 썼고 현재 준비 중인 박사학위 논문(이상 동국대)도 농구와 관련된 것이다. 스님은 고등학교와 대학 농구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거의 빠짐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프로경기는 사절이다. 순수한 열정 같은 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 스님은 동국대 경기 때도 벤치에 앉지 않는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응원을 보낼 뿐이다. 가끔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뒹굴며 보내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런 스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경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나올 때면 손이 근질근질할 때도 있지만 곧 마음을 놓아버립니다. 허허.”
○ 1978년 대학 졸업 앞두고 출가
스님은 1978년 겨울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은사는 태허(太虛) 스님. 1남 4녀 외아들. 집에선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왜 사는지, 삶의 끝은 어디인지 하는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스님의 수행 화두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나는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것이다.
“아직 멀었습니다. 한참 부족합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습니다. 물론 농구도 함께 가야하지요.”
농구공은 둥글다. 끝도 시작도 없다. 생물이다. 잡힐 듯하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깨달음의 길도 그렇다. 스님은 오늘도 ‘농구의 도’를 닦고 있다.
원주=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