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왜 이런 비판이 나오는지 솔직히 한번 고민해 봅시다.”
이건희(李健熙·사진)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계열사 사장단에게 ‘삼성의 독주’ ‘삼성 공화국’ ‘삼성의 나라’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허심탄회하게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 해외에서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으면서도 국내 일각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중적인 현상에 대해 삼성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 사장단 난상토론
삼성그룹은 1일 오전 8시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 주재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회의실에서 열리는 사장단 회의(수요회)에서 삼성에 대한 비판여론의 실체를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모임에는 계열사 사장단 20여 명과 구조조정본부 팀장급 이상 9명이 참석한다.
통상 초청강사가 1시간 동안 주제발표를 한 뒤 30분 토론을 하지만 이날은 초청강사 없이 참석자들이 난상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계열사 사장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해법을 찾느라 각계 여론 주도층의 의견을 듣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 본부장은 회의 결과를 즉시 이 회장에게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회에서 예민한 안건을 다루게 된 직접적 계기는 이 회장의 고려대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 때 빚어진 학생들의 시위 사태.
구조조정본부의 한 임원은 “고려대 사태 이후 여론은 전반적으로 삼성 편에 있었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 등 일각에서 삼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면서 “삼성에 호의적인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수출을 통해 나라 경제에 기여한 공은 도외시하고 지배구조와 노조문제 등 부정적인 측면만 언급하면서 삼성을 비난하는 일부 여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이 ‘싹쓸이’를 한다거나 ‘삼성의 나라’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감정적이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 비중 20.7%,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중 22.4%에 이를 정도로 질적 양적 측면에서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하다.
○ 무엇이 고민인가
삼성은 인재 확보 차원에서 법조계와 관료 출신, 언론인 등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대한 비판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삼성 계열사의 고위 임원은 “필요한 사람은 공을 들여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게 그룹의 방침”이라며 “외부 인력 스카우트를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문제는 삼성이 ‘찍은’ 핵심 인재에 대해 다른 그룹에서는 스카우트를 하기 힘들 정도의 파격적 대우를 해준다는 점.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임원은 “인재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급인력에 대해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들이 한국사회의 ‘연줄’을 통해 관료사회와 법조계에 입김을 행사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 삼성 독주에 대한 시각
삼성그룹 홍보팀장인 이순동(李淳東) 부사장은 “삼성이 1등 기업이 된 것은 국내 경쟁에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에 대한 지나친 견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삼성의 한 전직 임원은 “삼성이 열심히 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세금을 더 많이 내면 그것이 애국”이라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도와줘서 삼성이 큰 것은 아니지만 2등과 3등, 나아가 경쟁에서 탈락한 쪽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간부는 “삼성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삼성이 잘못하면 나라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영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중요성과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삼성 임직원이 보여 온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독선적인 행태가 반작용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