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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식량난 해결” 국가 총동원령

입력 | 2005-06-01 03:07:00

북한의 식량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제4회 대북협력 국제 비정부기구(NGO)회의 대표들이 31일 중국 베이징의 칭화쯔광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존의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을 개발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와 유엔 산하 국제기구 대표들이 지난달 30일까지 사흘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식량 문제 등과 관련한 대북협력 국제회의를 갖고 31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4년 만에 열린 회의였다. 대표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개발협력으로 전환하는 문제, 대북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집중 토론했다.

국제 가톨릭 구호단체인 카리타스의 캐시 젤웨거 국제협력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매년 500만∼550만 t의 식량을 필요로 하지만 현재 200만 t가량이 부족하다면서 “올해 북한은 날씨가 좋지 않아 파종 시기가 늦어진 데다 농약이 부족해 식량 생산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리처드 레이건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장은 “요즘 북한엔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졌으며 모든 직종의 사람들에게 모내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며 “심지어 외무성 직원들조차 주말에는 농촌지원을 나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WFP도 최근 “북한의 식량위기가 1990년대 중반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등 북한의 식량 문제가 10년 만에 다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량난, 그 이후=유엔이 1998년 북한 어린이 수천 명을 대상으로 영양 상태를 조사한 결과 저체중 60.6%, 급성영양실조 15.6%, 만성영양실조 62.3%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는 아프리카의 최빈국에서나 볼 수 있는 수치.

2002년 조사에서는 각각 21%, 8.5%, 41.6%로 크게 감소됐지만 식량 상황이 악화되면 예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충성도’가 해마다 떨어지고, 가구 간 소득격차가 확대돼 계층별, 지역별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배급제가 사실상 폐지된 1990년대 후반 이후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장마당(농민시장)에서는 비싼 열대 과일을 사먹는 사람들과 이들에게 구걸하는 걸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함북 청진지방에서 지난해 11월 400∼500원에 거래되던 쌀값이 5월 말 현재 900∼1000원으로 치솟았다. 투기 목적의 식량 사재기 사례도 많다.

잘사는 집은 육류와 생선을 마음대로 먹고 살지만 가난한 집은 국수 한 사리(약 200g)로 풀죽을 쑤어 하루를 연명한다. 북한은 이런 두 집이 지붕을 맞대고 사는 사회로 변했다.

▽외면하는 국제사회=북한 당국은 올해 ‘먹는 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었다. 평양의 한 국제구호기관 관계자는 31일 “요즘 전국의 수백만 인력이 농촌에 강제 투입되고 있다”며 “예년에 비해 많은 숫자”라고 말했다.

또 장마당 입구마다 규찰대가 서서 농촌지원확인서를 검사한 뒤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 예년에 볼 수 없던 광경이다. 집집마다 퇴비 할당량이 떨어져 노인들이 통을 들고 변소를 돌아다니며 ‘인분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權泰進) 박사는 “북한은 협동농장 자율권 강화와 포전(圃田·북한말로 논과 밭) 담당제 등 식량생산 제고를 위한 여러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체제 유지를 고려할 때 더 꺼내 들 카드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지지부진하다. 국제사회는 199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북한에 23억2431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지원국이 점차 줄고 있다. 특히 북핵 및 일본인 납치 문제로 미국, 일본 같은 주요 지원국이 등을 돌린 상태고, 우방국인 중국도 작황 부진을 이유로 지난해 북한에 대한 식량 수출을 중단했다.

동남아 지역의 지진해일 피해도 대규모 원조가 필요한 북한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기댈 곳은 남한뿐. 올해 남한이 북한에 지원하는 비료 20만 t은 북한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비료 소비량의 절반에 가깝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