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한국외교에 중대한 시점이다. 꼬이고 무너진 원칙과 시스템을 정비해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인지, 이대로 혼돈 속에 주저앉고 말 것인지가 이달에 판가름 난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 듯한 가운데 11일에는 한미정상회담, 20일경엔 한일정상회담이 있고, 그 사이에 평양에선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축전이, 하순엔 서울에서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린다. 한반도를 축으로 외세(外勢)와 내세(內勢)가 교차하면서 만들어 낼 ‘6월의 판도’는 우리의 미래에 큰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 중대 국면에 정부가 과연 외교의 가닥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한미정상회담만 해도 그렇다. 정상회담은 실무적 사전 합의가 이뤄진 후에 열리기 마련인데 이번 회담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어제 “북핵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허심탄회’라는 말은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을 때 주로 쓰는 외교적 표현이다.
‘동북아 균형자론’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외교부는 “한국이 설령 ‘역내 균형자’ 역할을 하더라도 한미동맹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지만 미국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균형자론’을 거론해선 안 된다. 북핵 해법에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일관계도 복원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대중영합적인 강경대응이 능사가 아님은 이미 드러났다. 일본 총리로 하여금 역사왜곡이나 외무차관의 문제 발언 등에 대해 실질적인 유감 표명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노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북핵 해결에는 일본의 도움도 필요하다.
한미, 한일관계를 튼튼히 다지는 토대 위에서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리면 북핵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하면 한국이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우려가 더 높아진다. 현실을 외면하고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질 경우 북핵 해결도 놓치고 우방도 놓친다.
6월을 잘못 보내면 이 정권의 남은 임기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정부는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