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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삶이 고달프다, 가족이 그립다”

입력 | 2005-06-02 03:28:00

제5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랑팡’(왼쪽)과 심사위원 대상인 그랑프리를 받은 ‘브로큰 플라워스’. ‘아버지 되기’가 주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5년 세계 영화계의 화두는 가족이다.

지난달 22일 폐막한 제5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의 영화 ‘랑팡’과 그랑프리를 받은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스’는 모두 아들을 찾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그렸다. 경쟁부문에 출품한 빔 벤더스의 ‘돈트 컴 노킹’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한국형 가족영화’를 표방하며 개봉한 ‘안녕 형아’(5월 27일)가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스타워즈’가 남긴 불후의 명대사조차 “나는 네 아버지(I'm your father)”이다.

가족 영화 '안녕 형아' 사진제공 MK픽쳐스

왜 지금 영화는 가족에 몰두하는가.

○ 부권(父權)의 회복? 보수로의 회귀?

자신의 갓난아이마저 돈 때문에 불법 입양시킨 철없는 스무 살 남자 부르노는 가출한 꼬마아이를 부추겨 앵벌이한 돈으로 산다. 어느 날 경찰의 단속에 걸린 꼬마는 도망가고, 그는 경찰에 자수한다. “다 내가 시킨 일이에요.”(‘랑팡’)

독신의 중년남성 돈은 ‘당신에게 열아홉 살 먹은 아들이 있다’는 의문의 편지를 받는다. 옛 애인들을 찾아 나선 돈은 스무 살 또래의 남자만 보면 ‘내 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날 한 허름한 차림의 청년을 바라보던 돈은 카페에서 바게트와 음료를 사서 건넨다. 화를 내며 대드는 청년에게 돈은 “내 호의를 받아 달라”고 애원한다.(‘브로큰 플라워스’)

남성은 아버지라는 책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생물학적인 친자관계를 넘어 아버지로 ‘태어난다’. 돈과 부르노는 비록 친아들과의 대면은 아니지만 아들처럼 여겨지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 됨’을 자각하는 것.

‘돈트 컴 노킹’의 퇴물 배우 하워드도 출생 사실조차 몰랐던 자신의 아들을 찾아내 그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이제 와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느냐”며 반항하는 아들과 하워드는 소리소리 지르며 싸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의례를 치르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가족이 영화의 주제나 소재로 다뤄질 때 모성(母性)의 문제는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이지만 ‘아버지 되기’ 혹은 ‘부권’은 시대적 징후와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레이거노믹스’를 주도할 때 강력한 남성상을 부각시킨 영화 ‘람보’가 나왔던 것이 예. 그러나 최근의 아버지는 람보와는 달리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는 가족 안에서도 사회적 발언자로서도 아버지의 위치가 흔들리기 때문. 빔 벤더스가 “(영화 속) 남성은 자신이 인생을 헛되이 날려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잃어버린 아버지(상) 찾기’는 9·11테러 이후 날로 보수화, 과거 회귀로 치닫는 구미 사회 분위기와도 맞물려 강력해진다.

○ 가족을 보는 한국의 시각…시장성+다양성

이에 비해 한국영화에서 올 상반기 가족이 조명되는 이유는 영화 시장에서의 ‘생존전략’ 측면이 두드러진다. 가족영화를 표방하며 ‘안녕 형아’를 내놓은 MK픽처스는 현재 한국영화관객 중 10대 후반∼20대 초중반이 전체의 70%를 웃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 관객층의 아래 위에 포진한 어린이와 30, 40대 그리고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따뜻하고 감동적인 가족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

MK픽처스 심보경 이사는 “가족영화 한 편당 ‘가족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을 5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멜로, 액션, 코미디가 삼분하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10∼20%는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화사 ‘봄’ 대표 오정완 씨는 “많은 제작사들이 가족영화를 구상해 왔다”며 “장기적으로 잠재 관객을 현실화해 영화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꼭 스타배우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타시스템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가족영화의 눈높이를 가족 구성원 중 누구의 것에 맞추느냐는 것.

‘좋은 영화’ 김미희 대표는 “‘나 홀로 집에’나 ‘아이 엠 샘’ 같은 영화는 가족영화지만 유아용은 아니었다”며 “어른과 아이의 눈에 모두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가족영화의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