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문협회(WAN) 총회에 참석 중인 아서 설즈버거 2세 뉴욕타임스 회장은 1일 “신문의 미래는 신뢰성 회복에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연합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언론이 책임감 있게 정확하고 공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를 판단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서 설즈버거 2세 뉴욕타임스 회장은 한국의 신문법 개정에 관해 대립된 의견을 보였던 노 대통령과 개빈 오라일리 세계신문협회(WAN) 회장대행의 WAN 총회 개막식 연설에 대해 이같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WAN 총회 참석차 방한 중인 설즈버거 2세 회장은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문의 미래 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마이클 골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발행인과 함께 회견장에 나온 그는 무거운 질문을 예상한 듯 “우리는 미국을 공식적으로든 혹은 비공식적으로든 대변하지 않는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는 언론에 대한 판단은 정부가 아닌 독자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난해 중국 정부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관련 정보를 뉴욕타임스에 사전 제보한 혐의로 구속해 현재까지 감금 중인 자사 직원 자오옌(趙岩) 씨를 예로 들었다.
“언론의 자유는 근본적인 가치로 언론에 대한 규제가 적으면 적을수록 민주주의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WAN이 한국 실정을 모른 채 한국의 일부 보수 언론을 돕고 있다는 언론시민 단체들의 비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모든 곳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는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신문의 미래
“인터넷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시대에 젊은 독자들이 더 이상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다며 신문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지만 인터넷은 신문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신문사에 뉴스를 전달하는 새로운 매체를 추가시킨 것입니다.”
‘신문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자신감에 넘쳤고 명료했다. 어떤 매체로 뉴스를 제공하느냐보다 양질의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설즈버거 2세 회장은 뉴욕타임스는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한다며 △9월부터 실행되는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비즈니스 칼럼, 스포츠 칼럼 등 고급 칼럼의 유료화 △인터넷 전문지식을 보유한 전문기자 채용 △멀티미디어 서비스 등 문화, 경제 관련 콘텐츠 등 양질의 콘텐츠의 지속적 개발 추진을 제시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현재 한 달에 5억 명가량의 페이지뷰를 기록한다며 “종이신문 하락세에 개의치 않고 TV나 인터넷 등 고급 뉴스를 팔 수 있는 다른 경로도 적극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즈버거 2세 회장은 또 이날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진행된 ‘커뮤니케이션 소비 방식의 변화’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 소비 방식의 변화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가 강조한 점은 신문사가 이제는 ‘소비자 권한 시대’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신문산업의 위기는 신문이 변화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매체 통합 시대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와 엔터테인먼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소비자 권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스미디어라는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매체의 힘이 분산되는 매체 봉건국의 시대입니다.”
그는 소비자들이 여러 가지 매체를 선택하는 데 있어 신문이 차별화돼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신문의 신뢰성 회복’을 강조했다.
○ 신문의 미래는 신뢰성 회복에서…
“결국 신문은 투명하면서 독자가 접근하기 쉬운 저널리즘이 되어야 합니다. 신문의 기본 가치는 신뢰성입니다. 신문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독자와의 계약입니다. 신뢰만이 다매체 시대에 신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절대 요건입니다.”
그는 최근 퓨 리서치센터의 미디어 조사에서 나타난 신문의 신뢰성 하락을 소개했다. 미국 사람들의 45%가 통신사, 신문 등의 뉴스를 거의 믿지 않고 있으며 뉴욕타임스는 평균치인 21%의 신뢰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의 신뢰성 개선 방안으로 △오보 규명과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 △익명의 취재원 배제 △보도에 사용된 증빙자료와 인터뷰 내용의 인터넷 공개를 제시했다. 이 밖에 그는 시민저널리즘과 타블로이드 판형, 무료신문,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 제공 등 신문산업 전반의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설즈버거 2세 회장은 ‘시민저널리즘’에 대해 “미국 내 3000만 개의 블로그가 운영된다”며 “이는 엄청난 목소리이자 오피니언이며 ‘진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뉴욕타임스 같은 정론지가 블로그의 내용을 여과나 검증 없이 그냥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뉴욕타임스는 독자에게 제공하는 저널리즘의 양을 줄여가면서까지 판형을 타블로이드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고 소수 포털 사이트에만 인터넷 뉴스와 광고가 집중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