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에카르트 제텔마이어 박사가 EADS 아스트리움에서 개발 중인 전천후 지구 관측 위성 ‘테라SAR-X’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드리히스하펜=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하얀 덧신에 줄무늬 가운을 입고 파란 천모자를 쓴 채 건물에 들어서자 거대한 육각원통이 다가선다. 주변에는 각종 전자장비가 눈에 띈다.
유럽최대 우주항공업체 EADS의 자회사 아스트리움(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소재)에 근무하는 에카르트 제텔마이어 박사는 “전천후 지구 관측 위성 ‘테라SAR-X’를 개발 중”이라며 “위성에 장착될 ‘합성 개구 레이더(SAR)’ 덕분에 어두운 밤이건, 구름이 끼건 지구 촬영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2008년에 발사될 예정인 한국의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5호’에도 국내 최초로 SAR 장비가 실린다. 기존 위성 아리랑 1호는 햇빛에 반사된 모습을 찍는 방식. 북한 용천 열차 폭발사고 때도 날씨가 좋지 않아 바로 영상을 얻지 못했다. 카메라 성능이 뛰어난 아리랑 2호가 올해 11월 우주로 향하지만 구름을 뚫고 지상을 촬영할 수는 없다.
SAR 위성은 1978년 미국의 해양탐사위성 SEASAT을 시작으로 최근 고해상도 정찰위성으로 활약 중인 미국의 래크로스까지 다양하다.
전천후 위성을 가능케 하는 SAR는 어떤 장비일까.
○5m 안테나로 정찰위성급 해상도 얻어
한강 다리가 보인다
유럽우주국(ESA)의 SAR 위성 ‘ERS-2’가 찍은 서울의 모습. 꾸불꾸불한 선이 한강이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보인다. 이 사진의 해상도는 25m. 즉 가로와 세로가 25m 이상인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사진 제공 ESA
SAR는 지상에 전파를 쏘아 그 반사파를 포착해 영상을 얻는 레이더 장비의 일종이다. 전쟁영화에서 보듯이 아군 측에 침입하는 전투기나 선박을 포착하는 데 쓰이는 레이더는 고정식이지만 SAR는 이동식이다.
제텔마이어 박사는 “SAR에 쓰이는 전파는 특성상 대기 중의 수증기에 의한 산란이 적어 구름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더란 말 앞에 ‘합성 개구(구경)’는 왜 붙은 것일까. SAR는 송수신용 안테나가 핵심장치다. 안테나가 클수록 해상도가 높아져 관측지점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지만, 위성에 실을 수 있는 안테나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EADS 아스트리움 볼프강 피츠 박사는 “합성 개구는 작은 안테나가 고속으로 움직여 커다란 안테나를 흉내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안테나의 위치가 계속 변하는데 각각의 위치에서 영상을 포착하고 이들 영상을 합성하면 큰 안테나로 찍은 것처럼 해상도가 좋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6년 봄에 발사될 위성 테라SAR-X는 5m 길이의 안테나로 정찰위성급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반면 고정된 안테나로 같은 결과를 얻으려면 길이가 10km에 달해야 한다.
○최고 가로 세로 1m 크기 물체 식별
광학 카메라가 달린 위성은 대걸레가 밀고 가는 것처럼 일정한 폭으로 지구 영상을 찍는 반면, SAR 위성은 이를 포함해 3가지 모드로 지구를 촬영할 수 있다.
‘대걸레 촬영 방식’은 표준해상 모드이다. 테라SAR-X의 경우 폭 30km, 길이 1500km의 좁은 띠 모양으로 촬영되고 해상도가 3m이다. 즉 가로와 세로가 3m 이상인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또 특정한 지점을 계속 찍어 자세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고해상도 모드, 표준 모드보다 더 폭넓게 찍는 광역관측 모드가 가능하다. 테라SAR-X나 아리랑 5호는 최고 1m 해상도까지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산불 홍수 감시등에도 유용
SAR 위성은 산불이 났을 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위성에서 쓰는 전파는 하늘을 뒤덮는 연기를 뚫고 산불의 진행 상황을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 또 깜깜한 밤이나 비 오는 날에 몰래 이동하는 적군의 차량도 추적할 수 있다. 이 밖에 SAR 고해상도 영상은 홍수 지진 산사태 해양오염 등 재해에 대응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아리랑 5호가 우주로 향하면 밤낮이나 기상에 관계없이 한반도의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리히스하펜=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