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를 아마추어 운운하는 사람도 조선시대 몇 차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사림파가 번번이 좌절하고 훈구파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는 역사의 후퇴를 개탄했을 것이다.”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사림파론(論)’이 정가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이 위원장이 1일 청와대 브리핑 기고문에서 ‘사림파’의 선명한 개혁성을 강조하며 대통령자문위원회를 겨냥한 세간의 비판을 일축했기 때문이다.
‘사림파’의 원조는 조광조(趙光祖·1482∼1519)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조선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창하며 급진개혁 정책을 펴던 그는 훈구파의 반발에 부닥쳐 개혁에 실패한 뒤 처형됐다. 여권 인사들이 ‘개혁 군주’로 높이 평가하는 정조 역시 사림파의 후예인 남인 세력을 중용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폈다.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은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조는 수원으로 수도 이전을 하려다가 노론 세력에 의해 좌절됐고, 노 대통령은 보수 세력이 반대해 (수도 이전에)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반에도 집권 세력 사이에선 비슷한 ‘조광조 신드롬’이 강하게 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최형우(崔炯佑) 전 내무부 장관 등 핵심 실세들은 “비록 당대에는 실패했지만 개혁의 대의는 높이 평가받았다”며 조광조의 개혁을 공·사석에서 자주 언급했다. 또 김대중 정부 때의 핵심 세력도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초반에는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그러나 이런 개혁 지상주의는 역풍을 부르기도 했다.
여권 내부에도 이 같은 ‘조광조 신드롬’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1일 경북 안동대 강연에서 “사림파는 부패한 집권 세력인 훈구파와의 투쟁 끝에 정권을 장악한 뒤 도탄에 빠진 농민생활을 안정시켜야 함에도 당초 개혁정신을 잃은 채 당파 싸움에 매달렸다”며 “우리 당은 사림파의 이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이내 몰락의 길로 빠져든 사림파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