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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장난 아닌 ‘장난전화의 심리’

입력 | 2005-06-03 05:28:00


아줌마: 여보세요! 너 혜숙이 알아 몰라?

혼이: 누구세요?

아줌마: 너 혼이 너너너너 오마이러브 한다면서.

혼이:누구세요?

아줌마: 어, 아줌마 혜숙이 엄마야. 너너, 우리 혜숙이 만나서 뭐랬어?

혼이: 혜숙이가 누구예요?

아줌마: 너 스타 크래프트 한다면서?

혼이: 여보세요?

아줌마: 어, 아줌마가 너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흑흑. 그니깐 우리 딸이 스타 크레프트 하는데, 네가 러커로 우리 딸 본진에 들어와서 드롭해가지구 죽였다면서.

혼이: 예?

아줌마: 너 우리…우리…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알아?

혼이: 누군데요?

아줌마: 박정희 대통령이야.

혜숙이 엄마 장난전화 듣기(도깨비 뉴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혜숙이 엄마 장난전화’의 일부다.

이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임설’이라는 누리꾼(네티즌)이 친구에게 장난전화한 것을 녹음해 올려 놓았다가 급속도로 퍼진 것이다.

인터넷에는 이 밖에 많은 장난전화 파일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 ‘용궁반점’에서 시작된 장난전화 열풍

올해 초부터 시작된 인터넷 장난전화 유행은 ‘용궁반점 시리즈’에서 시작됐다. 인터넷 방송을 하던 CJ(사이버 자키)가 오후 11시경 용궁반점이라는 중국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이 먹고 싶은데 영업을 더 하라’며 시비를 걸다 서로 욕설을 주고받는 내용이다. 실컷 약 올리고 맨 마지막에 “대머리 깎아라”하며 끊는 이 무례한 전화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컸다. 누리꾼들은 그 CJ의 미니홈피로 몰려가 사과를 요구했고 그는 다시 용궁반점에 전화를 걸어 사과한 내용의 파일을 올렸다.

‘김수미 간장 꽃게장 장난전화’도 있다. 꽃게장을 배달하러 온 택배원이 주문한 적이 없다는 남녀와 “3일 이내에 먹지 않으면 게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엉뚱한 소리를 주고 받으며 옥신각신하는 내용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장난전화 카페가 많이 생겼다. 한 포털 사이트의 장난전화 카페는 회원이 700여 명. 게시판에는 장난전화를 걸어도 된다는 번호와 장난전화하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다른 사이트도 마찬가지. 대부분이 올해 생긴 카페들로 장난전화 파일의 유행을 반영하고 있다.

○ 장난전화는 범죄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장난전화는 범죄다. 장난전화 파일만 해도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파일 속 용궁반점이 있다는 지역에서 같은 상호의 중국 요리집 대표는 “한동안 하루 수십 통의 장난전화가 걸려왔고 ‘거기가 그 용궁반점이냐’고 묻는 전화도 많았다”고 말했다.

114를 운영하는 코이스(한국인포서비스)에 따르면 114에는 하루 수천 건의 장난전화가 걸려온다. 괜히 “세상을 비겁하게 살지 마라”며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안내원이 여성임을 이용해 “시간 있느냐”고 추근대는 일도 많다. 그래도 안내원들은 “죄송합니다. 114안내에서는 전화번호만을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며 끊는다.

한 피자 배달 업체는 올해 만우절 하루 동안 3000여 건의 장난전화를 받았다. ‘무료 피자 배달에 당첨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으니 피자를 배달해 달라’는 내용이 많았다.

외국도 마찬가지. 미국 일간지 시카고선타임스는 올해 2월 ‘6개월간 3896건의 장난전화가 한 집에서 시카고 911센터에 걸려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타임스에 따르면 이라크에 파병된 병사의 가족에게 적십자 직원을 사칭해 그 병사가 죽었다는 장난전화가 수십 차례 걸려온 사례가 있었고 이는 ‘개인적인 테러’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한 무직 남자가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경찰에 9000건의 장난전화를 해 체포됐다’고 밝혔다.

○ 익명의 폭력

콜린 파렐과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2003년 영화 ‘폰 부스’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를 받고 보이지 않는 살인자에게 농락당하는 주인공을 통해 전화가 갖는 익명의 폭력성을 표현했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진료과장은 “얼굴을 보지 않아 죄의식이 덜하고 상대방은 수동적으로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장난전화를 하는 이에게 평소와는 다른 공격성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는 소극적이어서 공격성이 억압돼 있다가 그것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전화받는 사람’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2000여 건의 허위 응급전화신고 때문에 12번이나 구금됐던 영국의 셀마 데니스라는 40대 여성은 지난해 말 BBC와의 인터뷰에서 “장난전화를 걸면 쿵쾅거리던 심장박동이 정상을 되찾고 불안 증세도 사라졌다”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 그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난전화 상습범들은 불안하고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장난전화 파일을 듣고 좋아하는 것은 남의 통화를 엿듣는 관음증적 즐거움이나 차마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설명된다.

○ 장난전화 방지법

112, 119에는 장난전화가 근절됐다. 번호가 뜰 뿐 아니라 위치까지 확인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로 장난전화가 크게 줄었다. 문제는 번호를 숨기는 전화. SK 텔레콤에 따르면 휴대전화로 계속 ‘발신번호 미확인’ 전화가 올 경우 전화를 녹취하든가 경찰에 신고한 뒤 신고확인증을 떼서 고객센터에 가면 다시 그 전화가 왔을 때 번호가 뜨게 해 준다. 또 발신번호 미확인 전화를 아예 안 받는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

발신번호 표시를 신청한 집 전화의 경우 KT에서는 ‘155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전화국에 신청한 뒤 발신번호 미확인 전화가 왔을 때 통화 중에 전화의 후크 스위치를 살짝 눌렀다 놓고 끊은 뒤 155를 누르면 직전의 발신번호를 알려준다. 또 아예 발신번호 미확인이 연결이 안 되게 하려면 수화기를 들고 ‘*68*’을 누르면 된다. 해지시는 ‘#68*’.

반복되는 장난전화는 가까운 경찰 지구대에 신고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대 조기택 경사는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 또는 즉결심판에 처하는데 가벼우면 벌금형이지만 고의로 반복한 경우는 구류 처분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