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에 밀리는 과학, 어디 한두 번 일인가요.”
요즘 국내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밸리 실험실과 연구실에서 밤새워 일해 온 연구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1일 만난 한 벤처기업 CEO(최고경영자)는 “차라리 단지(斷指)라도 해서 우리 입장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분노는 지난달 30일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원 모임인 대덕클럽 초청으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을 방문한 최석식(崔石植) 과학기술부 차관의 강의 내용 때문.
최 차관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대덕R&D특구법)에 근거한 특구 범위를 대덕연구단지 이외 충북지역까지 확대하고 예산을 400억 원(대전시 당초 요구액 700억 원)으로 책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당시의 취지와는 다른 내용이다.
대덕R&D특구법은 정부가 대덕연구단지를 집중 지원해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삼겠다는 취지로 제정했다.
당초 법률명칭은 ‘대덕연구단지개발특구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었으나 국회 통과 직전 대구와 광주, 부산지역 국회의원들 반대로 ‘대덕연구단지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법률’로 ‘등’자(字)가 삽입되는 등 논란이 많았다.
이후 만들어진 시행령(발효 7월28일)은 특구범위를 전국으로 확대시킬 여지를 남겨 놓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학자의 논리가 ‘개방형 특구’라는 정치논리에 밀려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됐다.
1000 여개 대덕밸리 벤처기업 연합체인 대덕밸리벤처연합회 구본탁 회장은 “우리가 특구법의 범위가 대덕일원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닌 지원효과의 극대화에 있다”며 “대구의 섬유산업을 정부가 지원한다고 반대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내년도 예산 규모가 그동안 대전시나 과기부 등 누구나 인정했던 700억 원에서 갑자기 400억 원으로 줄었다는 말이 나오자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대덕밸리 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한 선임연구원은 “더 이상 정치논리에 과학정책이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연구실에서 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