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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첫승

입력 | 2005-06-04 03:02:00


거리는 온통 붉은 색으로 휩싸였다. 통제하러 나온 경찰은 속수무책. 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린 공방전은 잠시. 어느새 광화문의 드넓은 거리가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군중들은 어둠이 밀려오자 더욱 흥분 상태로 치달았다. 일견 무질서해보이기까지 한 집단 엑스터시의 현장.

“대∼한민국.” 누군가 선창을 하자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모두가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인파에 갇힌 차량들도 “빵빵빵 빵빵”, 한껏 경적을 울려댔다.

북과 장구를 메고 열기를 고조시키는 응원단, 온몸에 태극기를 칭칭 휘감은 젊은이, 얼굴에 태극무늬를 새긴 어린이, ‘아리랑’을 부르는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남녀노소 누구랄 것 없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은 천지를 뒤덮었다. 외신기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방 플래시를 터뜨렸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인 오후 8시 30분. 초반에는 정적이 흘렀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전반 2분 폴란드의 크시노베크에게 기습 돌파를 허용, 골키퍼 이운재가 1 대 1로 맞선 위기를 넘긴 한국은 10분경 설기현의 헤딩슛에 이어 13분 유상철이 골문을 살짝 비켜가는 20m 중거리 슛을 터뜨리면서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열광의 순간은 전반 26분에 찾아왔다. 이을용이 스로인한 뒤 설기현에게서 되돌려 받은 공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골문 앞으로 찔러줬고 황선홍이 왼발 발리슛으로 날린 공은 골키퍼 예지 두데크의 손이 채 미치기도 전에 네트를 갈랐다.

순간 동아일보사 옥상에서 쏘아올린 폭죽은 귀가 먹먹할 만큼의 굉음과 함께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았고 광장에선 덩실덩실 시민들의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이어 후반 8분 유상철이 20m 대포알 중거리 슛으로 추가골. 마침내 한국의 2-0 완승이 확정되자 광화문은 완연한 축제 한마당으로 돌변했다. 쏟아지는 꽃가루와 새벽까지 울려 퍼진 호루라기와 나팔 소리,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

48년간 4무 10패의 초라한 성적표 끝에 올린 귀중한 첫 승. 4800만 한국인 중 약 15%에 이르는 700만 명이 전국의 거리를 누볐다는 2002년 6월 4일. 4강 신화의 첫발을 내디딘 그날의 감격이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