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음반을 4집이나 내 가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할아버지는 소설을 써 낸다. 농사꾼이 개인전을 열고 스님이 대중음악을 녹음해 음반을 낸다….
바야흐로 ‘예술가 민주주의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예술’은 고귀한 것이고 따라서 창작 활동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소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옛말이다.
인터넷 개인 블로그와 싸이월드가 만인(萬人) 저널리즘 시대를 열었듯, 이제는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만인 아티스트’ 시대가 꽃피고 있는 것이다.
▽접었던 꿈을 펼친다=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꿔왔던 김안수(71) 할머니는 최근 자신의 4집 음반인 ‘부∼자 되세요’를 냈다. 스무 살에 결혼해 6년 만에 갑자기 남편이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후 두 아들과 함께 먹고사는 일이 급해 미용실 의상실을 운영하느라 접어야 했던 가수의 꿈을 뒤늦게 활짝 펴고 있는 것.
1992년 ‘한도 많은 통일이여’로 데뷔해 음반을 낸 것을 시작으로 올 2월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가사를 담은 4집 음반까지 냈다. 복지회관과 문화센터, 노인정 등을 돌며 노래 봉사를 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지난달 30일에는 안양교도소에서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첫 콘서트를 가졌다.
이번 음반 제작에 총 400여만 원이 들었다는 김 할머니는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보기가 좋았는지 작사·작곡가들이 많이 깎아줬다”며 “노래교실에서 아줌마들이 내 노래를 배운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야 진짜 가수가 되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취미활동이 아니다=요즘 많아지는 ‘만인 예술가’들은 자기과시나 여가활용 차원의 즐김 수준이 아니라, 프로정신을 갖고 생활 속에서 또 다른 자기 세계를 꿈꾸는 당당한 전문가들이다. 인생에 색다른 경력을 하나 추가하려고 잠깐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던 예전 사례들과는 다른 것.
최근 2집 음반 ‘온 더 로드’를 낸 엉클K(본명 강구원·42)는 가수가 되려고 잘 나가는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198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홍보파트에서 일했다는 그는 회사 행사 때 인연을 맺은 가수의 권유로 사표를 내고 1992년 1집 음반을 냈다.
그리고 13년 만인 지난달 2집 음반을 냈다. 강 씨는 “1집을 낼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웃음)의 등장으로 빛도 보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며 “1집 참패 후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가 이번에 2집 음반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음반 제작비가 예상치의 2배를 웃도는 4000여만 원이나 들었고 매니저가 없으니 홍보도 할 수 없어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철저한 프로정신을 가진 가수라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연화산 대성사 주지 운붕 스님은 ‘빈 잔’이라는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올해로 출가 34년째, 스님의 음반에는 속세를 그리는 듯한 내용의 가요 7곡이 수록돼 있다. 술, 아내, 어머니, 자식 등의 낱말이 트로트 가락에 실려 흘러나온다.
스님은 “내 앨범은 속세의 인연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가족, 사랑, 효 등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수련을 거친다=오랜 수련과정이 필요한 그림이나 문학이라고 해서 ‘만인 아티스트’의 영역에서 예외가 아니다.
4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고성연(48) 씨는 농사와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집념의 사나이. 어릴 때부터 화가를 소망했지만 중학교 졸업 후 감귤농사를 짓다 스물일곱에 무작정 상경해 미술학원에서 청소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데생을 배웠다. 고 씨는 “남들이 그려놓은 좋은 그림을 보는 일도 예술 행위이지만, 직접 나의 생각과 손으로 작업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일흔둘인 허영수 씨는 3월 ‘열 여섯 살의 여름’이라는 단편소설로 종합문예지 월간 ‘문학저널’을 통해 등단했다. 시나 수필의 경우에는 늦깎이가 더러 있었지만 마라톤 같은 지구력이 필요한 소설 분야에서는 드문 일.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서울교대 교수, 중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평생 교육자로 전념해 온 허 씨는 어릴 적 ‘문청(文靑)’의 꿈을 이제야 이룬 셈.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인터넷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와 소비하는 주체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며 “검색엔진의 개발로 ‘지식의 민주주의’가 이뤄졌듯이 이제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나 연예도 대중이 직접 생산의 주체로 참여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