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 일이…. 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이야.”
대박 조짐을 보이던 에어컨 판매가 ‘100년 만의 폭염은 없다’는 기상청의 날씨 예보 이후 크게 줄어들자 전자업체와 유통업체는 울상이다. 올여름 사상 초유의 무더위 예보를 내세워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던 날씨 마케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더위 마케팅’은 2월 이후 본격화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더드우주연구소 제임스 한센 박사가 “온실가스와 수증기 증가, 적도 부근 태평양 수온이 상승하는 엘니뇨현상 등으로 올해는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데 따른 것.
‘덥다’는 기준은 지구 전체의 연평균 기온이지만 여름 기온이 높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소비자들은 폭염에 따른 품귀 현상으로 에어컨을 구입하지 못해 무더위에 지쳤던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며 너도나도 주문에 나섰다. 예약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자 에어컨 제조업체들은 주말에도 밤낮 없이 생산라인을 풀가동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 기상청은 지난달 23일 ‘여름철 계절예보’를 통해 동아시아지역 여름철 기후에 영향을 주는 티베트 상층의 고기압 발달이 지연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무더위가 장기간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롯데백화점 가전 담당 홍두호 바이어는 “에어컨 판매가 전년 대비 300%대의 신장세를 보이다 기상청 예보 이후 100%대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날씨에 따라 소비자의 심리가 변하면서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실감난다. 특히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선진 경제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소비자가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날씨 정보 제공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민간예보 사업자인 케이웨더에 따르면 특정 지역의 맞춤 날씨 정보를 매일 제공받는 기업은 유통, 건설, 에너지, 제조, 레저 분야 4000여 곳에 이른다.
소비자가 사용 직전에 주로 구입하는 바캉스용품은 주말 날씨에 따라 매출이 크게 달라진다. 비가 시간당 10mm 내리면 대형 유통업체의 매출은 50%가량 줄어든다. 프랑스 파리 고급 주택가에 있는 양장점 앙타르티크는 매일 오전 9시 기온을 기준으로 가격 할인율을 정한다고 한다.
날씨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그만큼 정확하고 시의 적절한 기상예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경제에 어두운 먹구름이 걷히면서 모든 가정이 풍족해질 것이라는 ‘경제’ 일기예보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철 경제부 차장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