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납북자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6·25전쟁 이후 정부가 공식 인정한 486명의 납북자 가족이 그동안 ‘빨갱이’로 몰리며 겪어야 했던 고통은 끝나야 한다. 이들이 당한 인권침해 실태를 소상히 파악해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납북자 실태 파악과 납북자 송환을 북측에 요구하지 않기로 잠정결론을 내린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와 북한 내 인권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수십 차례의 남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공식 의제에 상정된 적이 없다. 특별법에서 북한에 대한 요구를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방침도 그 연장선의 ‘눈치 보기’인 셈이다.
정부의 태도는 지난해 5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10여 명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북-일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로 삼고, 북측을 다그쳐 일본인 납북자 잔류 가족을 직접 데리고 귀국한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국가의 최우선 의무라는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당연한 책무를 우리 정부는 줄기차게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이 상정될 때마다 불참이나 기권을 해 온 우리 정부에 대해 국제사회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국내적으로는 군사정권 시절의 인권탄압을, 일본에 대해서는 강점기의 인권유린 책임을 규명하겠다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태도에는 정합성(整合性)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납북자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진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납북자 본인들의 인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태 파악과 송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인권문제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공언대로 북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얼굴을 붉혀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