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6일 유럽연합(EU) 헌법 비준 찬반 국민투표를 무기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EU의 정치 통합에 확실한 ‘사망 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배경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EU 헌법 부결. 내심 EU 헌법 비준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영국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된 것.
특히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번 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영국 정부의 대외정책 초점을 유럽에서 제3세계의 빈곤 문제로 옮길 계획이라는 영국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어 유럽이 분열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영국 총리실의 EU 헌법 국민투표 연기 발표는 잭 스트로 외무장관이 이날 의회에서 EU 헌법 비준 국민투표 무기 연기 결정에 대한 설명을 하기 직전에 나왔다.
영국의 이 같은 결정은 유럽 통합의 궤도 이탈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기도 하다. 특히 ‘패배자의 축(Axis of losers)’이라고 조롱받고 있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4일 정상회담을 갖고 다른 국가들의 비준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밝힌 직후에 나온 것. 이에 따라 유럽의 강대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영국은 순번제 EU 의장국이 되는 7월 1일부터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에 대한 방안을 찾는 데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앞서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는 5일 “블레어 총리가 유럽 포기정책을 선택했다”고 블레어 총리의 측근인 한 각료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블레어 총리는 최근 측근들에게 “아프리카는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지만 유럽은 현재로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블레어 총리는 7월 주요 선진 8개국 정상회의에 앞서 빈곤 대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6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