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본명 장주·莊周)가 살았던 시대에는 개인 상호 간의 무한한 생존경쟁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처참한 전쟁이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공동체에 앞서는 개개인의 사람다운 삶의 추구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장자에 의하면 인간은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 유지를 위하여 생겨난 사회제도, 이념, 권력, 재물 등등은 결국 생명 밖의 존재, 즉 외물(外物)에 불과하다. 장자는 바로 이런 ‘외물’의 추구 때문에 도리어 살아있는 개개의 인간(생명)이 희생당하는 비극적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장자가 보기에 현실세계에서는 자기만의 특수한 ‘하나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집착하여 오로지 자기 인식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보고―자기와 다른 타자의―입장과 기준들을 부정하고 무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억압하는 독단적 이념이 넘쳐나고 있다. 이와 같이 다른 생명체에게도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기를 강요하는 독단론자들의 이념적 폭력을 장자는 기발한 우화와 비유를 통하여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장자에 의하면 인간의 기준은 결코 만물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척도가 될 수 없다. 인간 이기주의, 인간 독점주의를 병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장자의 사유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생명철학이다.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심장이나 간 등등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기관들은,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위(有爲)’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유위’하는 존재만으로는 생명성이 보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죽은 시체와는 달리 그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 기관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한 ‘아니마’처럼 ‘보이지 않는 총체적인 생명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총체적 생명원리가 바로 장자가 강조하는 ‘무위(無爲)하는 도(道)’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만물에게 각각의 ‘유위’라는 고유한 활동이 가능하려면, 바로 그 ‘유위’의 지평을 넘어서는 총체적인 생명원리인 ‘도’의 ‘무위’ 속에 포섭되어야 한다. 그 ‘도의 무위’ 속에서 각각의 ‘유위’는 자기의 개별성 또는 차별성을 최대한으로 보장받으며 서로 평등하게 보완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장자철학의 의의는 우선 오직 ‘하나의 척도’에 의거하여 무차별적으로 인간 본연의 생명성을 왜곡하고 압박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 규제나 간섭을 이념적 폭력으로 고발하고 그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부정에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자기 삶의 본연적 차별성을 찾아내려는 해방의 목소리에 있다.
사회 속에 살면서 사회적 제약을 넘어서려는 장자의 이상은 영원한 유토피아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삶의 ‘진정성’의 추구를 포기한 채, 가상세계가 이끄는 기계놀이에 매몰되어서 도구종속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장자의 환상적인 유토피아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장자’의 한글번역서로는 안동림이 역주한 ‘장자’(현암사)가 있고,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서로 오강남이 풀이한 ‘장자’(현암사)와 이강수와 이권이 옮긴 ‘장자Ⅰ’(길)이 있다.
송영배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