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자신감에 넘쳤던 영국의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1874∼1965)도 사실은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우울증을 ‘검정개(black dog)’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증세가 꽤 심각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이름을 따서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를 쓴 호주의 인기작가 베브 아이스베트는 ‘처칠이 죽는 날까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한 것은 우울증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풀이를 내놓기도 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도 불린다. 그만큼 흔한 마음의 병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얕보아선 안 된다. ‘가을을 타는’ 가벼운 증상이 극도의 불안과 절망,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감정 조절 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극단적인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영화배우 이은주와 장궈룽(홍콩)도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1세기 3대 질병 중 하나로 우울증을 꼽았다.
▷우울증은 흔히 중년에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청소년 우울증도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청소년기에는 불안 초조 슬픔 등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이지 않아 예사로 넘기기 쉽지만, 사실은 컴퓨터 중독 같은 것도 우울증의 한 타입이라는 진단이다. 대인관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온라인에서 얻으려는 행동이 우울증의 다른 표현이라는 얘기다.
▷서울대가 내년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우울증 실태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자살이 늘어나고 폭력사태가 잇따르는 등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울증세가 있는 학생은 전문의의 상담을 받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청년기의 우울증은 어디서 올까. 아마도 중고교 시절의 입시 중압감, 취업난 등 과(過)경쟁 상황이 한 요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울대의 학생 우울증 대책 소식이 우울하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