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로 이루어진 현악4중주단 ‘닥터스 콰르텟’이 12일 금호리사이틀홀에서 창단연주회를 갖는다. 왼쪽부터 진훈(비올라) 이인식(제2바이올린) 이건일(제1바이올린) 용태순(첼로) 씨. 박영대 기자 그래픽=박초희 기자
치과 안과 성형외과 개업의와 기생충학 교수. 네 명의 의사가 한 팀을 이뤘다. 가운 대신 연미복을 입고, 메스 대신 활(bow)을 든다. 악보가 이들의 교범이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사간동 금호리사이틀홀에서 첫 연주회 ‘인사’를 여는 현악4중주단 ‘닥터스 콰르텟’.
○1980년대 의대 오케스트라서 조우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은 의대가 이끌어 갔습니다. 당시 각 파트에서 구심으로 활동한 멤버들이 여기까지 온 거죠. (이인식·40·제2 바이올린·명동 밝은세상안과 원장)”
그와 비올라를 맡은 진훈(40·비올라·BK성형외과 공동원장) 씨가 먼저 연세대 의대 오케스트라에서 만났다. 치과대 연합 오케스트라인 ‘덴탈 오케스트라’와 교류하면서 서울대 치대 오케스트라 악장을 지낸 이건일(41·제1바이올린·인치과 원장) 씨와도 알게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턴 레지던트 생활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차차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면서 다시 악기를 손에 잡았다. “‘최고수들끼리 모여 보는 게 어때’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저희보다 연배는 위지만 의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는 첼로 파트의 ‘지존’으로 통하던 용태순(47·연세대 기생충학교실) 교수님을 영입했죠.”(진훈)
이렇게 해서 2002년 ‘닥터스 콰르텟’이 창단됐다.
○의사와 악기는 찰떡궁합?
“처음부터 공개 연주회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레퍼토리가 쌓여 가면 한번쯤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바쁜 생활 중에 이따금씩 모이다 보니 ‘목표가 있어야 제대로 연습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이건일)
국내 공연장 객석을 채우는 고정팬들 중 상당수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의사들이다. 1980년대까지 국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끈 것도 각 대학 의대 오케스트라였다. 왜 의사와 악기는 친한 것일까.
“의사의 일상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가만히 넋 놓고 앉아 있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집중을 하며 풀어야죠.” 이인식 원장의 해석에 진훈 원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의사들에겐 목표를 정하고 고집스럽게 달성하고야 마는 ‘외골수’ 경향이 있습니다. 계속 기술적인 목표를 부여하는 데 악기 연주는 안성맞춤이죠. 골프를 칠 수도 있겠지만.”(웃음)
○“몰입의 연주 들려줄 터”
이번 연주회에서 네 사람은 그리그 현악4중주 g단조, 베토벤 현악4중주 2번 ‘인사’, 드보르자크 현악4중주 12번 ‘아메리칸’을 연주한다. 프로 연주가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정통 레퍼토리다.
“앞으로는 소품 위주의 쉬운 레퍼토리도 넣을 생각이에요. 그렇지만 시작만큼은 아주 진지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여드리려는 작업이 이런 것이라는 뜻에서 연주회 제목도 ‘인사’라고 지었습니다.(용태순)”
목표? ‘노(老)의사’ 소리를 들을 때까지 계속 모여 음악의 비밀에 한없이 탐닉하는 것.
“연주회를 가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프로라도 타성에 젖어 연주하는 것과 진지하게 몰입해서 하는 연주는 다르거든요. 기량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몰입의 연주’를 들려드릴 겁니다. 자신합니다.” 네 사람은 입을 모았다. 초대권을 갖지 않은 관객은 선착순 입장 가능. 02-720-5114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