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1·경기 안양시) 씨는 휴대전화 스팸광고의 사전 동의를 의무화하는 ‘옵트인(Opt-in) 제도’에 기대를 걸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스팸전화를 받느라 정작 업무상 중요한 통화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 그는 3월 31일부터 옵트인 제도가 시행되자 각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 ‘060’ 번호를 이용한 광고를 차단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벨이 울려 휴대전화를 받았더니 ‘신용카드 연체자금을…현금서비스보다 빠르게 제공…’이라는 메시지가 들렸다. 발신번호는 ‘060’도 ‘030’도 아닌 ‘02-566-××××’였다.
옵트인 제도가 시행되면서 ‘060’을 이용한 스팸전화는 크게 줄었지만 이처럼 단속을 교묘히 피하려는 불법 광고전화가 여전히 휴대전화 이용자를 짜증나게 하고 있다.
▽일반번호 위장=김 씨는 자신에게 걸려오는 스팸전화 중 일반번호를 추려 리스트를 만들었다. ‘광고전화’라고 입력해 놓은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반번호를 이용한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와 포기했다. 그는 “일반번호로 표시되면 스팸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안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전화번호뿐이 아니다. ‘1544’ 등으로 시작하는 전국 대표번호나 0505, 0502 같은 평생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들어보면 자동응답기를 이용한 광고인 경우가 많다. 011, 016 등 일반 휴대전화번호가 이용되기도 한다.
▽호기심 유도=전화를 상대방에게 걸었다가 두세 번 전화벨이 울린 뒤 끊어버리는 ‘원링(One-ring)’ 방식은 새로운 유형.
호기심 때문에 전화기에 찍힌 부재중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면 역시 자동응답광고가 흘러나온다. 통화료까지 부담시키는 이 수법은 최근 일본에서도 사회문제가 됐다.
수신자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옵트인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간편 대출 월 2%…’로 시작되는 메시지 끝에 ‘동의 철회를 원하면 ×××-××××로 전화를 달라’는 문구를 붙여 통화를 유도하는 것.
▽대책은?=변형 스팸이 늘어나는 이유는 당국이 옵트인 제도 시행 이후 ‘060’ 단속에 집중했기 때문.
지난달 정보통신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옵트인 제도로 전체 스팸 수신량은 크게 줄었지만 ‘060’ 이외의 방식으로 보내는 스팸의 비중은 지난해 말 전체의 63%에서 최근 80%까지 늘었다. 전화를 이용한 불법 스팸 대신 e메일 스팸이 늘어날 조짐도 보인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스팸대응팀 관계자는 “060 광고가 대부분 사라지면서 다른 형태의 광고전화에 이용자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런 광고를 발송하는 업체를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