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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영화파일]박철수 감독의 ‘녹색의자’

입력 | 2005-06-10 06:45:00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중간에 세는 걸 포기해야 할 만큼 ‘녹색의자’의 주인공 문희(서정)와 서현(심지호)은 영화 속에서 무수하게 섹스를 한다. 말 그대로 ‘무지하게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섹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먹는 행위’다. 둘은, 문희가 출소하는 날 설렁탕을 시작으로 이후 숱하게 이어지는 진한 섹스를 전후해서는 자장면에서부터 일식 요리까지 도통 안 먹는 게 없을 정도다.

박철수 감독이 나이답지 않게 도발적으로 만든 ‘녹색의자’는 떠도는 풍문처럼 온통 섹스신으로만 덧칠해 놓은 영화가 아니다. 물론 영화 전편에 걸쳐 두 남녀배우가 옷을 입고 나오는 때가 옷을 벗고 나오는 때보다 더 적기는 하다. 하지만 박철수 감독은 섹스에 탐닉하기보다는 섹스를 부끄럽지 않은 일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듯이 보인다. 두 주인공들이 배고파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장면을 굳이 그렇게나 많이 연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는 것’과 ‘먹는 것’ 모두 살아가는 행위일 뿐 그렇게 요란을 떨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설정은 다소 ‘요란’하다. 32세 유부녀가 19세 소년과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몸에 열중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통념상, 어떤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속할 것이다. 영화 역시 그래서, 문희가 역(逆)원조교제라는 혐의로 구속돼 형을 살다 나와 사회봉사를 명령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재미있는 건, 그리고 ‘녹색의자’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같은 해외영화제를 돌고 돌아 작금의 우리 사회에 화제를 모으는 역전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영화의 내용을 사회 성윤리에 대한 지루한 사회공방이나 논쟁으로 꾸미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신선한 충격이자 미덕인데, 박철수 감독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이 둘의 사랑이 과연 완성될 수 있는지, 나이의 벽을 깨고 결실을 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통념에서 벗어난 설정을 가지고 가장 관습적인 멜로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녹색의자’는 충분히 끈기를 가지고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하워드 혹스가 이른바 ‘좋은 영화’라고 규정한 개념, 그러니까 ‘훌륭한 장면이 세 장면 들어있고 잘못된 장면은 하나도 없는 영화’라는 테두리에는 쉽게 끼지 못한다. 훌륭한 장면은 세 개가 훨씬 넘지만 잘못된 장면 역시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미학적으로 불완전하고 비(非)균질적이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가치판단 부분에 있어서도 다소 좌충우돌하는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흥미를 끄는 건, 기묘하게도 영화 전편에서 박철수 감독의 사회적 분노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데 있다. 생각건대, 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과 같은 중견감독이 영화를 쉽게 만들 수 없는 영화적 불리함, 사회적 위기감, 자본의 압박 등에 대해 ‘의도된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 감독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그러한 외적 상황이야말로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이 사회에서 처해 있는 편견과 구속의 부당함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을 억압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창작 행위 역시 보다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여주인공 문희 역을 맡아 ‘투혼’의 연기를 펼친 서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문희의 캐릭터는 얼마나 능숙한 섹스 행위를 보여 주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세 소년과의 사랑과 사회적 관습, 그 의식적 강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부녀의 미묘한 욕망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런 면에서 서정은 진일보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애절한 마음에 공감을 느낄 것인지는, 철저하게 보는 사람들의 몫일뿐이다. 10일 개봉. 18세 이상.

오동진 영화평론가·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