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무역업체에 다니는 이모(31·여) 씨는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고교 동창인 김모(31·광고회사 근무) 씨 때문. 김 씨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과 갈라서‘돌아온 싱글’이 됐다.
미모가 빼어난 김 씨에게는 소개 자리가 몰린다. 상대 남(男)은 전문직이나 고액 연봉자가 대부분. 반면 이 씨는 외모가 빠지지 않는데도 남자친구는커녕 소개받는 기회도 드물다. 이 씨는 “이혼녀에게도 밀릴 지경이니 노처녀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고 푸념한다. 이처럼 이혼여성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이혼 경력을 ‘주홍글씨’처럼 회복할 수 없는 낙인이 아니라 불가피했던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 이혼여성의 경쟁력
이혼여성에 대한 달라진 시각은 트렌드의 바로미터인 TV 드라마에서 우선 두드러진다. 8일 첫 방영한 SBS TV ‘돌아온 싱글’은 이혼남녀를 내세웠다. 이 드라마에서 이혼여성들은 일과 사랑에서 모두 당당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장기홍(45) PD는 “너무 이르다는 우려도 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흔한 이야기라는 독려가 많았다”며 “그동안 어두운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혼남녀들의 모습을 밝고 생동감 있게 그리겠다”고 말했다.
이혼을 낙인이 아니라 불가피했던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주최한 재혼을 바라는 남녀들의 맞선 자리. 사진제공 듀오
‘돌아온 싱글’에 대한 달라진 인식은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남녀회원 2578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혼 경력이 있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남성들 가운데 ‘결혼할 수 있다’는 응답은 17.2%로 2003년(8.9%)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응답자 중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28.8%) ‘자녀가 없다면 가능하다’(15.2%) 등 긍정적인 답변도 60%를 넘었다.
특히 남성이 여성에 비해 좀 더 관대한 경향을 보였다. 남성의 38.8%가 ‘결혼 경험이 있는 상대와 결혼할 수 없다’고 답한 데 비해 같은 답을 한 여성은 49.3%였다.
‘미혼이세요?’라는 질문이 ‘싱글이세요?’로 바뀌는 추세도 ‘돌아온 싱글’에 대한 달라진 시각을 보여 준다. ‘싱글이세요?’라는 말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 이혼한 사람, 배우자와 사별한 이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굳이 ‘미혼’이라는 말을 내세우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희길(41·사회학 박사) 소장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며 “이런 사회에서는 이혼여성에 대한 라벨링(labelling·딱지 붙이기)이 줄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수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총각들이 결혼 상대자로 이혼 여성을 찾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결혼정보회사 ‘닥스’의 김일섭(41) 이사는 “최근 행정고시에 합격한 총각이 ‘돌아온 싱글’을 결혼 상대자로 구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는데도 그는 ‘결혼 연습이 돼 있으니 더 좋지 않겠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서도 초혼남과 이혼녀의 결혼 사례가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했다.
미혼인 롯데호텔서울 이용재(43) 홍보실장은 결혼 상대가 이혼 경력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혼은 그 사람의 일부일 뿐입니다. 출신 학교나 좋아하는 음식 같은…. 이혼을 부정한다면 그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 수 밖에요.”
○ 왜 ‘돌아온 싱글’인가?
미혼남이 이혼 여성을 결혼 상대로 선택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혼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면서 이혼 자체가 큰 감점 요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돌아온 싱글’도 미모나 경제력 등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미혼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희길 소장은 “이혼 여성들은 경쟁력이 있어 결혼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이혼한 뒤에도 그 경쟁력은 여전히 발휘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듀오의 커플매니저 김미랑(46) 씨는 미모의 이혼 여성은 이혼 경력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모의 여의사 우모(38) 씨는 두 차례 이혼했고 출산도 했지만 소개 자리에 나온 남성들은 모두 ‘애프터’를 신청한다는 것이다.
‘돌아온 싱글’들이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난 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경쟁력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37) 씨는 “이혼한 뒤 몸매 관리를 더 하고 있고, 여러 자격증을 따는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혼을 계기로 나를 더 사랑하게 되면서 인생의 질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비슷한 관점에서 노처녀보다 이혼여성이 좋다는 남성들도 있다. 이혼여성과 사귀고 있는 김모(35·건설회사 근무) 씨는 “결혼을 못한 여성을 보면 혹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이혼 여성들은 경쟁력이 있으니 결혼까지 했던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혼을 하나의 경험으로 수용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완구업체에 다니는 김석구(33) 씨는 “대화의 폭이 넓고 남자를 잘 이해해 줘 만날 때 편안하다”고 말했다. 결혼 생활을 했던 경험이 이후 남녀의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 “혼자 산다고 쉽게보지 마라”
그러나 ‘돌아온 싱글’이 성(性)에 대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이혼 여성들은 “혼자 산다고 쉽게 보느냐”며 언짢아 한다. 한 여성은 “데이트 이후 집에서 차 한잔 마시자며 들이닥치려는 남자들이 많다”며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랬겠느냐는 생각에 서글프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에게 감정적으로(emotionally), 여자는 남자에게 도구적으로(instrumentally) 지향한다.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여자가 남자의 경제력을 따지는 경향을 이렇게 분석한 것이다.
원래 나이가 들수록 남녀 모두 ‘도구적 지향’이 두드러지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초혼남들의 상당수가 이혼여성의 경제력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선우의 이웅진(41) 대표는 “맞벌이가 불가피한 시대에서 이혼여성의 경제력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닥스의 김일섭 이사는 “이혼여성들은 대부분 30대 초중반으로 직장에서 중간 간부 이상의 지위에 있고, 특히 위자료로 일정 수준을 갖춘 경우가 많아 경제력을 조건으로 따지는 남성에게 인기가 많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아이도 남편 쪽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아 아이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게 장점이다.
○ 그래도 ‘새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초혼남과 결혼하는 ‘새혼’의 장벽이 가신 것은 아니다. 우선 부모의 이해를 구하는 게 큰 문제다. 잡지 기자인 김모(33) 씨는 “이혼했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는데 사귀던 남자가 자기 부모에게 그 사실을 숨길 때 내 처지를 인식했다”고 말했다.
상대가 초혼남이라는 사실에 대해 항상 경계를 해야 하는 점도 있다. 김모(41·의사) 씨는 이혼여성과 결혼한 첫날밤 설레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섰는데 신부가 침대에서 ‘퍼져 자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혀 했다. 이런 실망이 불씨가 돼 결국 이혼했다.
아들을 키우는 이혼 여성들의 경우는 매우 어렵다. 이들은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하기 어려울 정도다. 상대 남성이 재산 상속 등 여러 문제로 꺼리기 때문. 이로 인해 커플 매니저들은 “아들이 있으면 웬만하면 참고 살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글=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심사숙고후 결별 결정을” 이혼남녀 83%▼
이혼 남녀를 보는 고정 관념이 바뀌고 있지만 이혼 이후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이혼 남녀와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들에게 ‘이혼 그 후’를 들어봤다.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제연구소가 이혼한 경력의 회원 358명을 대상으로 3월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한 뒤 이혼을 결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자녀가 있는 경우는 특히 부정적이다. 자녀가 2명 이상일 경우 이혼을 “절대 하지 마라”와 “가능하면 하지 마라”는 응답이 30.9%를 차지했고, 1명 이상은 16.9%, 없는 경우는 14.2%를 차지했다.
재혼할 때도 자녀 양육 문제는 가장 큰 부담이다. 특히 아들이 있는 이혼 여성들은 재혼이 거의 어려운 실정이라고 커플 매니저들은 말한다.
그러나 결혼 6∼8년 된 부부의 이혼율이 가장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자녀가 있는 사람과의 결혼을 수용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강조한다. 이 대표는 최근 한 일간지에 의견 광고를 내고 “자신은 자녀가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자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재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자녀가 있는 사람끼리 만나 결혼 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양육 원칙을 정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혼여성들은 자기 관리에 충실하면서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경향이 있어 독신을 계속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후 생활을 감안하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사람을 찾는 게 낫다고 커플 매니저들은 입을 모은다.
잔인하게 들리지만 커플 매니저들은 “여자들은 경제력이 없으면 이혼하지 말라”며 “이는 철저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이혼할 때 위자료 문제를 해결해 자립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이들은 덧붙인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