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 총주방장(왼쪽)과 김성일 주방장이 이질적인 두 음식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음식 앞에 서자 금세 오랜 친구가 된 듯했다. 강병기 기자
서양 요리 중에는 프랑스 요리가 최고로 꼽힌다. 동양 요리에서는 중국 요리, 그중 광둥(廣東) 요리가 가장 유명하다. 기자가 만난 유명 프랑스 요리사들에게 ‘좋아하는 요리’를 물으면 한결같이 ‘광둥 요리’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워낙 식재료가 풍부하고, 일찍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 요리 종류나 조리법이 다채롭게 발달한 까닭이다.
광둥 요리 중심지인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인 샹그릴라 호텔 ‘샤궁(夏宮)’의 리창(李强) 총주방장이 3∼9일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에서 프로모션을 위해 내한했다. 샤궁은 둥젠화(董建華) 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등이 자주 찾는 곳이다. 워낙 유명 인사가 많이 오는 곳이어서 기자들이 늘 입구에 진을 치고 기다리기도 한다. 리 총주방장은 세계 샹그릴라 호텔 체인의 중식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마침 홍콩에서는 한류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궁중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가장 세계화된 요리 종주국에서 한식이 어떻게 재발견되고 있을까. 신라호텔 한식담당 총책임자인 김성일(43) 주방장과 리 총주방장이 광둥과 한국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에 다녀온 김 주방장은 각종 해외 프로모션을 통해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신라호텔은 홍콩 샹그릴라 호텔에서도 한식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
○ 비행기와 잠수함을 빼곤 모두 먹는다
김 주방장은 신라호텔이 한식의 고급화 세계화를 위해 꾸린 ‘한식 일류화 태스크 포스팀’을 맡고 있어 한식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다. 김 주방장이 “왜 세계인들이 광둥 요리를 잘 먹고 좋아하느냐”고 묻자, 리 총주방장은 “풍부하고 신선한 재료와 다양한 조리법에서 나오는 무한한 맛의 체험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일식만 하더라도 사흘만 줄곧 먹으면 질리지만 광둥 요리는 일주일 이상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네 발 달린 것은 책상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광둥의 요리사들은 이색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야생 동물 보호 운동이 거세지면서 수년 전부터는 곰이나 뱀 등 야생 동물 요리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 주방장이 “한식도 조리법이 매우 다양한데 정작 서양에 알려진 것은 불고기나 갈비 등 구이 종류뿐”이라며 아쉬워했다. 리 총주방장은 “(광둥요리가) 덜 맵고, 덜 느끼하고, 살아 있는 재료를 사용해 맛이 신선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대장금’이 부른 한국음식 열풍
대장금 열풍 덕분에 홍콩에 있는 한국 식당들의 매출이 평균 20% 올랐을 정도다. 리 총주방장의 부인도 대장금을 꼭 본다고 한다. 리 총주방장은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에게 요리 이야기가 매력적인 데다 주연을 맡은 이영애 씨의 단아한 외모도 대장금 열풍에 한몫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음식이 인기를 끌자 정통 광둥요리 전문가인 리 총주방장도 한국 김치를 응용한 메뉴를 샤궁에서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김치는 매워 중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중국식으로 상당 부문 ‘개량’했다. 그가 만든 ‘광둥형 김치’는 양배추를 소금으로 절인 뒤 홍고추 설탕 식초 등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든 소스에 버무려 내는 요리다. 절이는 시간 때문에 1∼2일이 꼬박 걸린다.
두 차례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는 리 총주방장은 한국 음식 중 삼계탕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삼계탕은 샤궁에 가장 도입하고 싶은 한국 음식”이라며 “홍콩의 한국 식당에서 쌈 요리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한 한국 음식의 단점은 많은 요리가 한끼용으로 돼 있어 한번의 식사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 그래서 그는 “샤궁에서는 삼계탕을 ‘닭고기 스프’처럼 코스 메뉴 중 하나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쌈 요리는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먹기에는 괜찮지만 비즈니스 등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서는 부담스럽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광둥식에도 양상치쌈 요리가 있는데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나오는 점이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 주방장은 이에 대해 “같은 이유로 한식을 고급 코스 요리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한국 요리는 한 상 가득 요리를 내는 ‘공간전개형’이었지만 이를 서양식 ‘시계열형’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메뉴일수록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순서대로 즐길 수 있는 코스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메뉴도 텁텁하기 쉬운 고추장 요리 대신 간장을 이용한 요리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신라호텔 한식팀이 인기 메뉴인 비빔밥과 갈비구이를 내오자 리 총주방장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 사람은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음식에 주는 눈길 하나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는 언어가 달라도 통하는 게 세 가지 있거든요? 음악 미술 요리.”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