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일부 부서가 최근 분가(分家)했습니다. 경제통계국과 금융경제연구원이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것입니다.
멀리 가진 않았습니다. 몇 발짝 떨어진 옛 상업은행 본점 건물입니다. 한은이 올해 3월에 사들인 이 건물(현재 ‘소공 별관’으로 불립니다)은 서울 한복판 요지에 있지만 풍수(風水)를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은 좋은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번창하길 바랍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한은은 이 건물을 사면서 여기에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탁아소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왜일까요?
당초 급여후생과에서 본점 직원 중 아이를 맡길 만한 200명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120여 명이 “소공 별관에 탁아소가 생기면 아이를 맡기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희망자 접수를 받았더니 고작 9명이 신청하더랍니다. 이래가지곤 도저히 보육시설을 운영할 수가 없었겠죠.
결국 한은은 소공 별관에 보육시설을 운영하려던 계획을 무기 연기했습니다.
한데 왜 그렇게 수요가 적었을까요?
몇몇 직원은 “매일 야근하는데 어떻게…”라고 합니다. 하지만 퇴근 후 ‘한잔’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직원은 “눈 딱 감고 집사람한테 아이를 맡겨놓으면 편한데 어느 남자가 자청해서 양육부담을 지려고 하겠느냐”고 하더군요.
‘영유아보육법’이란 게 있습니다.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인 직장은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부득이한 사유로 그러지 못할 땐 보육비의 50% 이상을 지원하라는 내용입니다.
출산율을 높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자거나 남녀평등까지 거론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육비를 지원하지 않는(지원하는 직장이 얼마나 될까요?) 한은이 보육시설을 만들 의지와 여유공간이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위법’을 하게 되다니….
여운이 좀 남습니다.
정경준 경제부 기자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