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낮에 만난 임정만 씨 모자. 아이들은 임 씨에게 삶의 이유다. 김미옥 기자
“행복이라는 것, 느끼는 순간 깨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생활설계사 임정만(37·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씨는 3년 전 남편을 잃었을 때 엄마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더욱 괴로웠다고 한다.
전업사를 하던 남편은 출근한 뒤 뇌출혈로 쓰러져 사흘 만에 눈을 감았다. 큰아들(10)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군인이었던 임 씨의 아버지도 임 씨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임 씨가 홀로 된 나이와 꼭 같았다.
임 씨는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려고 무척 애썼다”고 회상한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임 씨는 당시 119구조대원이던 남편과 결혼했다. 틈틈이 공부해 방송통신대 법학과와 명지전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였다.
“아이들 키우고 요리학원 다녔죠. 생활이 여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남편과 싸우기도 했는데 요즘 가슴 아프게 다가와요.”
남편이 죽은 충격 때문에 1년 정도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동사무소에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 신청을 했다. 월 50만 원의 생활보조금으로 세 식구가 살았던 시절이다. 임 씨는 오전 8시 반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작은아들(7·초등 1년)은 운동장에서 한 시간 이상 4학년인 형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린다. 큰아들이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본다. 인근 복지관에서 수학을 무료로 가르쳐주는데 가지 않으려는 동생을 설득해 데리고 간다. 함께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TV와 책을 보기도 한다. 작은 녀석은 배가 고프면 전화라도 하는데 큰아들은 엄마가 귀가할 때까지 참는다.
“학년 초에는 아이들 담임선생님께 저희 형편을 말씀드리고 공부도 공부지만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드려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왜 꼭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제가 겪은 아픔을 아이들도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미안해요.”
남편이 죽었을 때 큰애는 많이 힘들어했다. 지난해에는 갑자기 “엄마, 재혼하면 안돼? 아빠 있으면 좋잖아” 하고 졸랐다. 아이 친구들이 1년 내내 ‘아빠도 없으면서’라고 놀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큰애는 책도 많이 읽고 상도 곧잘 탄다. 임 씨도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좋아한다. 임 씨는 최근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가 주최한 ‘우리가족이야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임 씨는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주위의 편견”이라며 “이 세상에는 부끄러운 삶도, 남에게 무시당해야하는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