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평소 친분이 있던 도올 김용옥 씨와 태국 모처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 제공 문화일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산둥(山東) 성 옌타이(煙臺) 시의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며 출국한 뒤 5년 8개월째 해외도피 생활을 해왔다.
2001년 3월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 명단에 올랐다. 이어 한국 여권의 유효기간이 2002년에 만료됐지만 1987년 가족과 함께 취득한 프랑스 국적을 이용해 세계 각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출국 직후 장협착증 등으로 건강이 나빴던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근에 머물며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는 독일에서 만난 가까운 한국 인사에게 “내가 전경련 회장을 하면서 ‘경제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했다”며 회한의 감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한국의 고속철도(KTX) 사업 추진과 관련해 친분을 쌓은 프랑스의 열차 제작업체인 로르 그룹에 조언을 하면서 수술비와 병원비, 생활비 등을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1월엔 프랑스에서 ‘사회보장 번호’를 받았다.
2002년 10월 친분이 있던 도올 김용옥(金容沃) 씨와 태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는 “대우그룹 해체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신흥 관료들과의 갈등 때문이며 관료들을 너무 믿었다”면서 “하라는 대로 따라서 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파렴치한 나쁜 놈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2003년 1월 미국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전화해 출국했다”고 말했다. 측근들은 아직도 “김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잠적에는 DJ 정부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을 앞두고 귀국할 생각이 있었으나 정치상황이 복잡해지자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등을 오가며 경제 조언 활동을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정부 산하 경제연구소 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베트남 신도시 건설을 조언하고 있다.
한 측근은 “대우그룹이 주도하던 베트남 수도 하노이 주변 신도시 사업에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등 한국 건설업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참여할 수 있도록 김 전 회장이 주선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올해 4월 초 호찌민시의 한 호텔에서 교민들에게 목격되고 같은 달 18∼21일 베트남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김종률(金鍾律) 의원을 만나는 등 최근에는 주로 베트남에 머물며 입국 준비를 해 왔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