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중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참여정부’ 정책방향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완성할 즈음 노 대통령은 인수위 보고서와는 별도로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400쪽짜리 보고서를 받았다.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대한 어젠다’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인수위 보고서와 함께 현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과거 비서실이나 회장실 역할을 하는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LG라는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LG그룹.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은 이 그룹의 ‘싱크탱크’인 LG경제연구원이었다.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소로 꼽히는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조직 운영전략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이 대외 지향적이라면 LG는 그룹 계열사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이다.》
○ KDI보다 센(?) 삼성경제연구소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책 아이디어는 실제로 정부 정책에 많이 반영된다. 단순한 페이퍼(보고서) 차원이 아니라 정책실행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능가한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온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경제중심 국가론’이나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은 삼성경제연구소 쪽에서 먼저 던진 화두(話頭). 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전국 유세를 다니면서도 이 연구소가 발간한 정책 자료집을 읽어보면서 지인들에게도 일독(一讀)을 권한 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에도 청와대 정책실과 대통령소속 위원회의 중요 현안에 대해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할 정도로 정치권에 대한 ‘근접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소 윤순봉(尹淳奉) 부사장은 지난해 9월 13일에는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 창립 심포지엄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제언’을 발표해 미래 유망산업 발굴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또 이달 29일 열린우리당 정덕구(鄭德龜)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시사포럼(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에서 향후 10년 내에 선진 G10국가에 진입하기 위한 국가경영전략도 소개할 예정.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등 핵심 경제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경기 용인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합숙훈련을 실시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관료집단에 대한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
○ 그룹 내부 컨설팅에 주력하는 LG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은 그룹의 핵심 산업에 대한 전략분석 업무가 많은 편. 전자와 통신, 화학 등 그룹의 핵심역량인 산업과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룹 계열사에 대한 비전 제시와 함께 △장기발전전략 △사업 구조조정 △중장기 사업전략 등 컨설팅부문에 대한 연구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또 그룹 차원에서 신규 투자와 사업철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브레인’ 역할도 맡고 있다.
지난해 LG전자의 중국사업 전략에 대해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연구원은 LG전자가 중국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으로 상품 이미지 고급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그룹의 숙원 과제인 지주회사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이론적 뒷받침에서 조직운영 구상에 이르기까지 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올해 초에는 ‘정보통신부가 발주한 10년 후 정보기술(IT) 산업 비전 수립’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계열사뿐 아니라 국내 중견 기업체와 정부 부처 및 공기업에 대한 경영컨설팅도 맡고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