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동맹관계의 굳건함을 확인했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이런 성과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허한 거대 담론은 접어두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자. 가장 쉽고 효과가 빠른 길은 미국을 아는 사람들에게 한미관계를 맡기는 것이다. 인사(人事)가 실사구시적인 방법이라는 얘기다.
미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미관계를 주도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반미(反美) 좀 하면 어때”라던 대통령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겪어야 했던 혼란과 지불해야 했던 코스트를 떠올려보라. 적어도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라도 미국과 ‘말’이 통하는 사람을 중히 쓸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적인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그 주변엔 ‘친미파’가 포진하는 것이 균형을 위해서도 좋다.
이런 점에서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의 후임 인선은 일종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거론되고 있다지만 미국도 알고 국제무대 경험도 있는 사람 중에서 후임자를 찾는 것이 상책이다. 재야 운동가 출신을 기용해 과거사 규명작업이나 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한미관계도 추스르고, 세계화에 맞춰 정보기관의 변신을 주도할 역량도 갖춘 사람을 쓰는 것이 옳다.
한미관계가 이처럼 어렵고 민감할 때는 국정원장 한 사람만 제대로 써도 미국에 주는 신호로서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다. 정보 일선에선 “한미 간에 정보 교류가 아예 끊겼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불신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가 간의 신뢰라는 것도 결국 그 일에 관계된 사람의 개인적 성향과 역정(歷程)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쉽게 꺼낼 얘기는 아니지만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진퇴 문제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그가 외교·안보의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 ‘자주’의 깃발은 올렸을지 몰라도 한미관계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모든 게 그의 책임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쯤은 공과(功過)를 따져보고 계속 기용할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권 후반기에도 그를 그 자리에 두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국가 간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적당한 수준에서 논란의 당사자를 가려내 잠시 쉬게 하거나 자리를 바꿔 줌으로써 상처를 봉합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이다. 경천동지할 잘못이 없더라도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양국 정부의 체면을 살려 주고, 서로 득이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이를 통해 상대국의 진의(眞意)와 관용의 한계를 파악하고, 이쪽의 요구와 양보도 조절함으로써 신뢰를 쌓아 가는 법이다. 그것은 또한 인사권자로서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의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이 한국을 믿지 않아 일본도 한국과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경우는 반면교사라 할 만하다. 일본 정부가 야치 차관에 대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했더라면 한일관계는 상당히 진정됐을 것이다. 적어도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고서도 날짜도 못 잡는 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례가 한미관계에 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차제에 외교통상부와 외교관들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외교부의 미국담당 실무자들을 ‘친미파’로 몰 정도로까지 경원해선 곤란하다. 집권 세력이 외교부를 믿지 못해 다른 경로를 활용하기 시작하면 국가의 생존에 필수적인 외교적 경험과 지혜의 축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미관계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외교부는 제쳐 놓고 대미외교 경험도 없는 NSC 실무자가 워싱턴으로 날아가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핵 위기도 해소하고 한미동맹도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면 유능한 직업 외교관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창의적이고 유능한 이들 ‘프로그룹’으로 집권 후반기의 외교·안보팀을 짜야 한다. 아마추어에 집착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