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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조헌주]징용, 그리고 60년의 기다림

입력 | 2005-06-14 03:20:00


“63년 전 헤어진 아버지가 오늘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다며 제사를 못 지내게 하는 아흔 살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 드려야 할지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답해 주십시오.”

부친의 빛바랜 사진을 들고 선 최낙훈(崔洛勛·65) 씨의 애절한 호소에 장내를 메운 200여 명의 유족과 시민, 보도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1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국인 징용희생자 관련 모임에서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돈 한 푼 보내 온 일 없고 유일하게 보낸 사진 뒷면에는 ‘협화회(協和會) 훈련대원’이라고 씌어 있었다. 협화회란 재일 한국인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기관이었으니 이곳에서 ‘황국신민’ 정신교육을 받고 어디에선가 강제노동을 했을 것이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중순 ‘곧 귀국하겠다’는 편지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최 씨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 드리고자 한국 외교통상부와 일본 후생노동성, 우정성, 사회보험청 등을 찾아다녔으나 허사였다.

이날 모임에서는 민간단체가 종합 정리한 징용희생자 753명의 신원 명세를 보도한 본보 10일자 기사가 복사돼 배포됐다. 다들 잊어버린 때에 관심을 가져 주어 고맙다고 유족들이 입을 모았다. 그간 사회의 무관심이 오죽했기에 감사의 말을 듣나 싶어 부끄러웠다.

최근 발굴된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1962년 한일 수교협상 시 일본 측은 한국인 징용자 중 4만여 명의 사망자 명단을 확보한 상태였다. 한국이 당시 제시한 ‘사망 1만2000명, 부상 7000명’ 자료를 일본 측은 기록에 남겨 놓았다. 납치와 다를 것 없는 범죄 실상을 감춘 채 일본 측은 목숨을 흥정거리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블에 마주한 한국 정부 대표단의 엉터리 숫자를 비웃으며.

분노는 일본의 비인도적 처사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무책임·무성의한 태도로도 향한다.

1971년 2만1000여 명의 희생자 명부가 처음 건네진 이래 1991년과 93년 등에 모두 48만여 명 분의 군인·군속·징용자 명부가 한국에 전달됐다. 그중엔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됐다는, 도장도 선연한 서류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부가 유족을 찾아 이런 사실을 전해 주려 한 흔적은 찾을 길 없다.

정부가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활동을 보면 생색내기 수준인 것 같다. 예산, 인력 탓에 피해자 신고만 받기에도 바쁘다고 한다.

진상규명위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 확보된 자료를 확인하고 유족을 찾아나서야 한다. 고령의 유족들은 오늘도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또 일본에는 30여 년간 징용 문제를 다뤄 온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 등 민간단체가 많다. 총련계 인사가 많다는 등 편견으로 이를 외면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망국의 설움 속에 비극적으로 숨져 간 징용 희생자들을 위해 남북의 벽을 넘어야 한다.

60여 년의 긴 기다림에 이런 노력이 흡족한 답은 될 수 없을 것이나 오랜 세월 버림받아 온 한을 그래도 조금은 달래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