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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연금제도 흔들

입력 | 2005-06-14 03:20:00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5일 제너럴모터스(GM)의 투자등급을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자존심인 GM이 추락한 가장 큰 원인은 퇴직자에 대한 연금과 의료보험비용 지출이 연간 56억 달러(약 5조6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기 때문. 자동차 1대를 팔 때마다 1525달러가 이들 비용으로 충당되는 셈이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주요 선진국과 유수의 기업들이 연금이라는 ‘시한폭탄’ 앞에서 무기력증을 드러내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연금적자=기업연금 비중이 큰 미국에서는 연금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연금 부분에 대해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최근 근로자 11만9000명에 대한 기업연금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델타항공 등 다른 기업에서도 연금 납부 거부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연금 납부를 중단하는 기업이 늘면서 연금 지급을 보증하는 정부기관인 연급지급보증공사(PBGC)의 적자 규모가 지난해에는 233억 달러에 이르렀다. 현재 미국 전체 기업연금의 적자 규모는 4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연금과의 전쟁’에 나선 유럽=유럽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오스트리아는 퇴직 전 임금의 93%, 스페인에서는 94.7%를 연금으로 받는다. 이러다 보니 조기퇴직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연금제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에서 ‘어젠다 2010’의 기치를 내걸고 연금 개혁에 착수해 2003년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수급연령도 상향조정했다.

프랑스도 2003년 연금개혁법을 통해 연금 납입기간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동안 이익집단의 반발로 지연됐던 연금 개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와 퇴직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면서 아직도 획기적인 개혁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연금 개혁의 정치학=미국에서 연금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퇴직자협회(AARP). 이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회원이 3500만 명이나 되기 때문. 산별노조연맹(AFL-CIO)의 노조원이 1300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다. 노인들은 젊은층보다 투표율도 높다.

이러다 보니 연금제도 개혁은 정치인들에게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다. 내 임기 중에만 피하자는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실제로 연금 개혁을 추진한 각국의 정당들은 정치적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달 독일 사민당은 텃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 연금 혜택마저 줄이자 전통적 지지층이 등을 돌렸기 때문.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EU) 헌법이 부결된 것도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악재 속에서 연금 개혁 등 복지축소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역풍에도 불구하고 지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연금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S&P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지금 연금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2020년에서 2035년 사이에 주요 선진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