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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쌀 점유율 상승 노력” 구두약속도

입력 | 2005-06-14 03:20:00

13일 국회에서 열린 쌀 협상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국조 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조일현 특위 위원장(앉은 이) 주변에 모여 질의 순서를 조정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정부는 쌀 협상기간(2004년 1월∼2005년 4월) 내내 협상의 실익과 국민감정을 놓고 저울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 보면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었지만 ‘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본보가 확인한 정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사정 때문에 공식 문서뿐 아니라 구두 약속, 편지 등을 통해 협상 상대국에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 ‘첫 단추’부터 불안

농림부는 쌀 협상이 시작되기 전인 2003년 12월 외교통상부에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지연에 대비한 쌀 협상 추가 대책’이란 제목의 문건을 보냈다.

문건에는 정부의 불안감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쌀 재고가 넘치는 상황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을 늘려달라는 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개방하는 것보다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쌀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에는 2014년까지 의무수입물량(TRQ)을 전체 소비량의 8% 선으로 올리겠다고 합의하면 개방보다 나쁘다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시장을 완전히 열어도 낮은 관세율로 수입되는 물량이 7.13%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미국 “시장점유율 보장하라”

미국은 지난해 초 쌀 협상에서 2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국별 할당제(쿼터제)를 허용해 시장 개방을 미루더라도 한국이 의무적으로 미국 쌀을 수입하라는 것과 수입쌀 시장에서 미국 쌀의 점유율을 2014년까지 31%로 높여달라는 것.

정부는 협상 전인 2003년 말까지만 해도 통상관계의 일반원칙인 최혜국대우원칙(MFN) 취지에 어긋난다며 국별 할당량 부여를 꺼렸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규정된 당사국 합의 원칙에 따라 국별 할당제를 허용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비용이었다.

시장점유율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웠다. 이를 수용하면 공정경쟁의 원칙을 깼다는 국제적 비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4년 10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미국의 요구를 쌀 시장 개방 유예가 시작된 지 4년차 되는 해부터 이행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구두로 제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약속도 너무 구체적이어서 정부로선 부담이 컸다. 작년 12월 정부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고위 관계자에게 “시장점유율을 구체적 숫자로 보장하지 않는 대신 미국 측 요구를 유념해 요구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힘쓰겠다”는 내용을 구두로 전달했다.

○ 아르헨티나, 인도 등의 무리한 요구

정부는 협상 막바지까지 아르헨티나, 이집트, 인도 등 이른바 ‘기타 국가’와의 협상을 매듭짓지 못해 애를 먹었다.

아르헨티나는 자국산 닭고기 수출을 위해 한국 정부가 올해 6월 말까지 검역 절차를 끝내라고 요구했다. 한국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은 이 요구를 수용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아르헨티나 가축 조사전문기관인 세나사(SENASA) 측에 보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검역 관련 서류를 갖추지 못해 검역은 일단 보류됐다.

정부는 또 대북(對北) 지원에 사용되는 이집트산 쌀을 국제입찰을 통해 구매할 때 중립종과 단립종을 구분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부가합의를 이집트와 맺었다.

○ 전문가 평은 엇갈려

전문가들은 쌀 협상 결과가 나쁘진 않지만 과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성도(全成道) 대외협력실장은 “식량원조용으로 인도와 이집트에서 쌀을 구입해주기로 한 탓에 시장 개방 유예기간에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8.18%로 늘었다”며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대 김충실(金忠實·농업경제학) 교수는 “다시 협상한다고 해도 이만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면합의 숨겨” “추가합의일 뿐”… 국회-정부 공방▼

국회 ‘쌀 협상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13일 청문회를 열어 쌀 협상 이면합의 의혹 등을 집중 조사했다. 특위 위원들은 “정부가 협상력 부재로 사실상 이면합의를 해 주고도 국민에게 숨겼다”며 협상 책임자들을 추궁했다. 그러나 증인으로 출석한 정부 관계자들은 “이면합의가 아닌 추후 부가합의”였다고 맞섰다. 다만 협상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점은 사과했다.

▽이면합의냐, 부가합의냐=최대 쟁점은 정부가 쌀 협상을 위해 다른 품목을 양보했는지 여부. 특히 중국산 사과와 배의 검역절차를 완화해 사실상 수입을 허용한 것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김재원(金在原) 의원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주중 한국대사관에 보낸 문건 중 ‘여타 현안은 쌀과의 연계 논란 가능성을 감안해 일단 합의문에서 삭제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이는 당시 이면합의가 진행 중이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중국의 요구로 검역절차 문건에 ‘조속한’이라는 표현을 넣었다가 이후 삭제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점을 지적했다. 잘못된 협상으로 중국산 과일의 수입을 앞당겨 한국 과수산업에 피해를 주게 됐다는 것.

이에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조속히 한다는 표현이 있어도 8단계 검역절차를 거쳐야 하고 당장 수입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이방호(李方鎬) 의원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급진전되는 등 정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쇠고기 수입과 쌀 협상이 연계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지난해 협상 당시 책임자였던 허상만(許祥萬) 전 농림부장관은 “이면합의가 전혀 없었다는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쌀 시장점유율 보장 요구에 대해 정부가 ‘유념하겠다(take note)’라고 답변한 부분도 논란이 됐다. 민주노동당 강기갑(姜基甲) 의원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되는 시장점유율 보장 요구를 명백히 거절 안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반성한다”=열린우리당 이시종(李始鍾) 의원은 “사과와 배 이야기가 처음 불거진 지난해 7월과 쌀 협상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2월을 비롯해 4번의 설명 기회가 있었는데도 정부가 끝까지 이를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현종(金鉉宗)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 와서 제대로 보고했어야 하는데 미숙한 점이 있었다.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한덕수(韓悳洙) 경제부총리는 “농림부나 시민단체 등이 추천하는 농민 전문가를 협상 대표에 포함시키는 것을 제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