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 도너츠 최이철 주임이 서울 서대문구 던킨 도너츠 신촌점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제품이 알맞게 놓여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회사 직원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미스터리 샤퍼’로 활동한다. 사진 제공 던킨 도너츠
《#장면 1
신세계백화점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점 선글라스 행사매장.
“제 나이에 어울릴 만한 선글라스 하나 추천해 주세요.”(손님)
“알이 큰 커다란 갈색 선글라스가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잡지를 보여 주면서) 요즘 연예인들이 많이 쓰는 거예요.”(판매원)
살짝 웃어 보이면서 매장을 떠나는 주부 김미현(가명·40) 씨. 그러나 그녀는 뒤돌아서면서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물건 권하는 솜씨는 점수를 줄 만하네요. 그런데 머리가 부스스하고 립스틱을 안 했어요. 옆에 서 있는 점원도 표정이 좋지 않아요. 점원 이름요? 벌써 다 외웠지요.”
#장면 2
던킨 도너츠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점.
“적립카드에 적립해 주세요.”(손님)
“예, 감사합니다.”(판매원)
던킨 도너츠 최이철(崔理哲) 주임은 도넛을 쟁반에 듬뿍 담아 탁자 위에 놓는다. 맛있게 먹는 척하다가 눈치를 보면서 뭔가를 수첩에 적기 시작한다.
“적립카드는 판매원이 손님보다 먼저 얘기해야 하는데…. 테이블 정리는 빨리 하는 편인데 유니폼에 빵 부스러기가 묻었어. 손님이 들어올 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주부 김 씨와 던킨 도너츠 최 주임은 ‘미스터리 샤퍼(mystery shopper)’다.
미스터리 샤퍼는 손님을 가장해 매장에 들어가 판매원의 서비스와 제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점검해 본사에 보고하는 사람. 판매원들에게는 ‘암행어사’로 불린다.
○ 미스터리 샤퍼도 노하우가 있다
“이제 다시 이 옷은 못 입고 와요.”
경력 6년차 미스터리 샤퍼인 주부 김 씨의 말이다. 기자와 함께 들른 선글라스 매장에서 기자가 “선글라스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잘 어울려요”라고 경어로 품평을 했기 때문이란다.
김 씨는 “쇼핑을 같이 올 정도면 친한 사이인데 경어를 쓰면 직원이 의심한다”며 “다음 번 매장에 들를 때는 눈치 채지 않게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샤퍼는 매장 점원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가방, 의상, 액세서리 등 같은 스타일로 두 번 매장을 찾지 않는 것은 기본. 본사에 들어갈 때는 행여 매장 판매원을 만날까봐 핸드백으로 얼굴을 가리는 ‘007 작전’을 벌이기도 한다.
판매원이 보지 않는 곳에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도 중요하다.
김 씨는 “내가 써 낸 보고로 직원이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서비스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사로운 동정심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 서비스와 품질 지킴이
외식업체와 유통업체들은 전문 미스터리 샤퍼 외에 본사 직원과 주부 모니터요원 등도 미스터리 샤퍼로 활용한다. 판매 현장의 서비스 실태를 이중 삼중으로 점검하기 위한 것.
던킨도너츠 최 주임은 “본사 직원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미스터리 샤퍼가 된다”며 “150개에 이르는 미스터리 샤퍼 체크 리스트를 모두 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은 미스터리 샤퍼에게 점검할 ‘미션’을 구체적으로 던져 준다.
예를 들면 ‘여름철 행사 매장의 서비스를 점검하라’, ‘구두 매장에서 온갖 신발을 신어 봐라’, ‘경쟁업체 의류매장을 둘러봐라’ 등.
때로는 고객들이 불만을 자주 토로하는 매장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한다.
현대백화점 CS 향상팀 이해찬(李海粲) 주임은 “본사가 정해 준 표준화된 서비스가 매장에서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게 미스터리 샤퍼의 역할”이라며 “이들의 평가는 인사고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장 직원들이 늘 긴장한다”고 귀띔했다.
신세계 CS팀 문상일(文相一) 대리는 “서비스도 백화점의 무형상품 중 하나”라며 “미스터리 샤퍼들은 현장을 ‘감시’하는 차원을 넘어 소비자 입장에서 행사 매장의 진열 상태나 마케팅 요령 등도 조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