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는 양상문 롯데 감독. 그는 “귀신도 야구 승부는 예측할 수 없다”며 “아마 그 재미에 다들 야구감독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인천=박경모 기자
《프로야구 감독은 애간장이 없다. 다 녹아버렸다.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 양상문(44) 롯데 자이언츠 감독. 그는 요즘 죽을 맛이다. 팀이 연패 수렁(14일 현재 9연패)에 빠져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 5연패 중이던 10일 SK와의 경기를 위해 인천에 원정 온 그를 만났다. 부석부석한 얼굴에 퀭한 눈. 짠하다. “정말 잠이 안 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숙소에서 중계방송 녹화테이프를 보면서 복기하다보면 날이 환하게 밝아 옵니다. 아쉬운 부분도 많고 ‘저때 왜 저런 작전을 썼을까’ 하고 후회될 때도 있고….”》
양 감독은 1978년 부산고 3학년 때 대통령기, 청룡기, 화랑기 3관왕을 이끌며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고려대와 실업팀 한국화장품을 거쳐 1985년 고향 부산의 프로구단 롯데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2년 뒤 청보로 트레이드 됐다. 프로통산 전적은 63승 79패 13세이브. 투수로서 썩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평균자책이 통산 3.59에 불과할 정도로 절묘한 제구력을 자랑했다.
감독 첫 해인 지난해 양 감독은 꼴찌를 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2001년부터 4년 연속 꼴찌다. 계약 기간은 올 시즌까지. 지난겨울 모두 이를 악물었다. 훈련 또 훈련.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시범 경기 1위. 4월 23일 SK전부터 29일 LG전까지 6연승. 5월 13일부터 사흘 연속 부산 사직구장 만원 관중. 팀 순위 3위. 감독 선수 프런트 모두가 ‘한번 해보자’며 똘똘 뭉친 결과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다시 연패의 늪에 빠졌다. “다시 치고 올라갈 겁니다. 결국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겁니다. 저는 가능한 한 선수를 믿고 그들에게 맡기려 합니다. 때로는 작전을 걸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꾹 눌러 참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이 연패에 빠져 허우적댈 땐 약간 변화를 줘야 합니다.”
양 감독은 불교 신자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엔 가까운 절을 찾는다. 20분 정도 참선을 하고 108배를 올린다. 머리가 맑아진다. 가끔 골프장에 가서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한다. 핸디 7 수준. 홈경기일 때는 산에 오르거나 아이들과 어울린다.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술, 담배는 안한다. 최근엔 하도 답답해 ‘양치기 리더십’(케빈 리먼, 윌리엄 펜택 공저·김영사)이라는 책을 무릎을 쳐 가며 읽었다. 어쩌면 야구 감독과 양치기가 하는 일이 이렇게 똑같을까. 양치기는 양떼를 몰지 않는다. 양떼를 모는 것은 개들이다. 양치기는 양떼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끈다. 양 감독의 양떼는 선수 80여 명을 포함해 100여 명.
“어디 양도 보통 양들입니까. 거의 양치기급 양들이지요. 프로선수는 각 개인이 사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팀 내의 룰을 깨뜨리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양치기도 울타리를 넘는 양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양 감독은 선수들과 살갑게 스킨십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부분은 코치들에게 맡긴다. 대신 선수들 옆을 지나면서 툭툭 한마디씩 던진다. “야, 요즘 방망이 잘 맞더라” “볼 끝이 박찬호보다 낫더라”라는 식으로 관심을 표시한다. “선수들 몸 풀 때 보면 그 선수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몸놀림이 시원찮은 선수는 슬쩍 지나치며 냄새도 맡아봅니다. 어젯밤 술 마셨나 하고. 아무리 순한 선수라도 운동장에선 성격이 돌변해야 합니다.”
한국시리즈 통산 10승의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 사장은 최근 “야구 감독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양 감독은 어떨까.
“야구 감독이란 자리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난 다시 태어나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우승컵 안아 보는 게 정말 소원입니다.”
목장의 인부는 돈을 위해 양을 돌본다. 그러나 양치기는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양을 돌본다. 양 감독은 그의 사랑하는 양떼를 이끌고 ‘타는 목마름으로’ 우승하고 싶다. ‘눈물나게 고마운’ 부산 갈매기들과 함께.
인천=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