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열린우리당은 총선 공약이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로 정부 측과 논란을 벌이다가 공개하지 않기로 일단 결론을 냈다. 시장경제 원리에 반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주택공사 분양아파트의 원가를 공개할 경우 임대주택 건설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분양원가 공개는 일부 시민단체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런데 평소 시장주의를 강조해 온 한나라당의 정책위원회가 그제 느닷없이 ‘공공주택은 물론이고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아파트도 분양원가를 공개토록 하는 방안’을 띄웠다. 이혜훈 제4정책조정위원장은 “주택은 일반상품과 달리 제품이 완성된 상태에서 소비되는 게 아니므로 소비자가 분양가를 세부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분양원가를 세목별로 공개하면 분양가격 인하효과가 생길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래서 건설업자의 이익이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분양된 아파트는 주변의 기존 아파트와 가격 동조현상을 보이고,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면 값이 폭등할 소지마저 커진다. 결국 건설업자 몫이던 이익보다 더 많은 이득이 분양을 받은 사람에게로 옮겨가는 부(富)의 이전효과만 낳기 쉽다. 건설업자의 이익이 커지면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라도 있지만, 분양자에게 이전된 이득은 투기적 불로소득의 증가만 가져오기 십상이다. 수급 불균형 속에서 분양대박을 꿈꾸는 투기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은 뻔하다.
▷재건축, 토지이용, 용적률 등에 대한 다중(多重)규제가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의 주요인이다. 건설업자의 이익을 예컨대 10%로 제한하는 위헌법률이라도 만들어 원가 공개와 연계할 생각이 아니라면 규제를 풀도록 하는 것이 집값 안정의 지름길이다. 한나라당이 정부 여당의 실패를 보고도 ‘시장원리와 돈의 심리를 따르는’ 각론 대안(代案) 이전에 원가 공개 카드를 내미는 것은 정책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반(反)시장적인 악수(惡手)보다는 무책(無策)이 차라리 덜 해롭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