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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對北觀에 영향주는 그룹

입력 | 2005-06-15 03:15:00


10일(현지 시간)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부른 것이 부시 대통령의 진심이었을까. 부시 대통령은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굶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늘 강조하는 말이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이라는 공조직의 보고 자료도 있지만 고향인 텍사스 주 미들랜드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도들과 워싱턴의 북한인권운동가 그룹의 영향이 ‘보다 직접적’이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정설이다.

▽미들랜드의 복음주의자들=독일인 북한인권운동가 노르베르트 폴러첸 씨는 거침없는 반(反)김정일 운동으로 한국 내에선 기피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미들랜드를 방문했다. 그는 200개 교회연합회 회원을 상대로 자신이 북한에서 갖고 온 비디오를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을 고발했다. 집회장은 눈물과 기도의 범벅이었다는 후문이다.

폴러첸 씨의 방문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들랜드에는 부시 대통령과 가까운 성경공부 친구들과 로라 부시 여사의 직계 가족들이 살고 있기 때문.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10일 워싱턴에서 만난 미들랜드 교회연합회 데버러 파이크스 사무총장은 “미들랜드와 부시 대통령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의 (직정적인) 텍사스 기질이 굶주리는 북한 인민의 아픔을 여과 없이 드러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4일자에서 “미들랜드의 관심이 아프리카 수단의 기독교 탄압에서 북한의 인권 신장으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미들랜드의 막후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기사다.

▽워싱턴의 외곽 조직들=다른 외곽 세력은 워싱턴에 본부를 둔 ‘종교자유 및 인권을 위한 전국연합’이다. 기독교 우파, 민주당 성향의 유대인 조직이 섞여 있는 초당적 조직으로, 지난해 공화·민주당이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도왔다. 서울의 한 소식통은 “폴러첸 씨를 미들랜드에 소개한 인물 역시 이 단체의 실무총괄자인 허드슨연구소 마이클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이라고 말했다.

탈북자인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가 13일 백악관의 초대를 받아 부시 대통령을 면담하자 뉴욕타임스는 이날 “(공화당 외교 전략의 대부 격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에게 그의 수기를 읽어보도록 권했다”고 보도했다. 파이크스 사무총장은 본보 기자와 인터뷰 당시 “부시 대통령의 친구가 (그 책을) 전달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어느 경우든 부시 대통령의 주변에 북한 인권문제를 ‘주입’시키는 외곽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부시, 탈북 수기 쓴 조선일보기자 백악관 초청▼

13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백악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3일 새터민(탈북자)으로 ‘평양의 수족관’이라는 책을 써 북한의 인권 상황을 폭로한 강철환(37) 조선일보 기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40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이 책을 읽고 참모들에게도 권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적 압박으로 고통을 겪는 북한 주민들, 특히 임산부나 어린애가 굶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강 기자는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인도적 지원은 정치 문제와 연계하지 않는 게 나의 원칙이고 그래서 많은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고 또 지원할 생각”이라며 “한미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에 보다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면 미국은 가장 많은 식량과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왜 한국인들은 김정일의 인권 유린에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묻기도 했다고 강 기자는 덧붙였다.

강 씨는 “그 자리에는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 등 4, 5명의 백악관 보좌관들이 있었고, 면담을 시작한 지 10분쯤 뒤 딕 체니 부통령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강 씨 가족은 일본에서 살다 북한으로 이주한 뒤 강 씨의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려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보내졌다. 강 씨도 9세 때부터 10년 동안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는 1992년 북한을 탈출했다.

강 씨는 2000년 프랑스 언론인 피에르 리굴로 씨와 함께 수용소 체험담을 냈고, 이듬해 영문판이 나왔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