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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은 왜 이 작품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억 명 이상의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무대다.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지하에 숨어 사는 음악 천재 팬텀, 팬텀 덕분에 무명의 코러스 걸에서 프리마돈나가 된 크리스틴, 크리스틴의 약혼자 라울. 관객들은 19세기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수백 벌에 이르는 화려한 의상, 객석 위로 수직 상승하는 1t에 가까운 대형 샹들리에, 촛불 사이로 배가 미끄러지듯 흘러가도록 하는 특수 효과, 스펙터클한 가면무도회….
130분 동안 눈과 귀는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만, 1막의 하이라이트인 ‘샹들리에 추락 장면’에서 공연장 구조상 샹들리에의 낙하거리가 짧은 탓에 속도가 다소 느려진 것은 아쉬웠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특히 첫 곡이자 크리스틴의 단독곡인 ‘나를 생각해줘요’와 주제곡 ‘오페라의 유령’, ‘밤의 음악’, ‘오직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곳’ 등은 뮤지컬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주연 배우들이 ‘반드시’ 잘 불러야 하는 곡들.
크리스틴 역의 마니 랍은 청순한 미모로 주목받았으나 떨림이 많은 성악적 발성이라 ‘원조 크리스틴’ 사라 브라이트만의 청아하고 맑게 뽑아 올리는 노래에 익숙한 관객에겐 다소 낯설었다.
2막 9장의 크리스틴과 라울(제로드 칼란드), 그리고 팬텀의 3중창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하지만 관객 전원의 기립박수와 다섯 번에 걸친 커튼콜은 단연 팬텀 역의 브래드 리틀을 향한 것이었다. 브로드웨이 등에서 팬텀 역을 1800회 이상 맡아온 그는 ‘110% 팬텀’이었다. 그는 190cm의 거구에서 뽑아내는 풍부한 성량, 바리톤과 테너의 영역을 넘나들며 저음에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가창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밤의 음악’ 등을 듣다 보면 얼굴 절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음에도 노래 속에서 연기가 묻어나 마치 그의 생생한 표정을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특히 크리스틴과 키스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팬텀이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사랑의 고통을 표현해낼 때 관객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2001년 국내 배우들로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과의 차이이자 당시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도 바로 이런 섬세한 연기였다.
탁월한 팬텀 때문에 다른 배우가 빛을 잃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팬텀만으로도 이번 공연을 권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공연은 9월 1일까지. 02-580-1300
▼뮤지컬 속에 ‘극중극’ 형식 오페라가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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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가 아니라 뮤지컬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뮤지컬에는 ‘극중극’ 형식으로 3편의 오페라가 등장한다.
1막 1장에 등장하는 ‘한니발’과 9장의 ‘일 무토’, 그리고 2막 7장에 등장하는 ‘돈 후앙’이다. 물론 이런 오페라는 없다. 모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들어낸 것.
이 뮤지컬의 인기곡인 ‘나를 생각해줘요’는 극중 오페라 ‘한니발’에서 소프라노가 단독으로 부르는 아리아다.
팬텀은 오페라 ‘일 무토’(‘벙어리’라는 뜻)에서 당초 대사 없는 단역이었던 크리스틴을 여주인공으로 세우고, 프리마돈나인 칼로타에게 시종 역을 맡도록 요구한다. 칼로타가 팬텀을 비웃으며 이 오페라의 삽입곡 ‘어리석은 그가 나를 웃게 해’를 부르지만 팬텀의 저주로 목소리가 꽥꽥대는 두꺼비 같은 소리로 변한다.
세 작품 중 압권은 2막 4장인 ‘돈 후앙’이다. 이 작품은 극중 팬텀이 작곡한 것으로 설정된 오페라다. 팬텀은 몰래 주인공 돈 후앙으로 변장하고 여주인공 역인 크리스틴을 납치하려 한다. 돈 후앙이 극중 여자를 방으로 데려가려는 대목과 팬텀이 자신의 지하 세계로 납치하려는 내용이 겹쳐진다. 오페라 속에서 돈 후앙과 여자가 부르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의 대사가 절묘하게 팬텀과 크리스틴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명장면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