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은 13일 흑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린치행위(사적인 집단살해)를 막지 못한 역사의 오점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번 사과는 린치행위를 막기 위한 법률안에 미 상원이 제동을 걸어 온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뒤늦은 참회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린치행위 피해자는 4743명. 숨진 이들의 4분의 3가량인 3446명이 흑인이었다. 사건의 대부분은 80여 년(1882∼1968년)에 걸쳐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일어났으며, 일례로 10대의 에머트 틸은 백인 소녀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끌려가 린치행위로 살해됐다.
이 같은 린치행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200건 가까운 반(反)린치행위 법안이 발의되고, 1920∼40년 이 중 3건이 하원에서 통과되기도 했지만 상원에서는 남부 보수주의자들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로 번번이 무산됐다.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은 “오늘은 미국의 ‘성찰의 날’”이라고 말했고, 사과결의안을 주도한 메리 랜드루 상원의원은 “세계적인 대테러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국내 테러리즘인 린치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시시피 버닝’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흑인 인권운동가 마이클 슈워너, 제임스 체이니, 앤드루 굿맨(왼쪽부터).
이날 의사당에는 200여 명의 피해자 유족들과 유일한 생존자인 제임스 캐머런(91) 씨가 사과결의안 통과를 지켜봤다. 1930년 구두닦이였던 캐머런 씨는 백인살해 혐의로 목이 매달리기 직전 누군가 “그 애는 되돌려 보내”라고 말하는 바람에 풀려났다. 그는 “내가 살아난 것은 기적(miracle)이었다”고 이날 회고했다.
때마침 이날 1964년 인권운동가 살해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백인우월주의자 전도사에 대한 재판이 사건 발생 41년 만에 시작됐다. 피고인 에드거 레이 킬런(80) 씨는 백인우월주의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의 조직원으로, 흑인 인권운동가 3명을 살해한 사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중에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된 이 사건에서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은 그를 비롯한 7명을 기소해 대부분 범죄공모 혐의로 유죄평결을 내렸으나, 그에 대해서는 한 배심원이 “전도사에게 유죄평결을 내릴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석방됐다. 지난해부터 인권단체들은 이 사건의 재조사를 주장해 왔고, 미시시피 주는 올해 1월 재수사에 착수해 킬런 씨를 체포한 뒤 3건의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3월 벌목사고로 부상해 보석상태였던 그는 이날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출석했으며,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몰려든 백인우월주의자와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시위를 우려해 법원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했으나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시시피 버닝 사건:
1964년 미시시피 주 네쇼바 카운티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던 청년 3명이 살해된 사건. 연방수사국 조사결과 이 지역 전체가 비극의 공모자였다. 당시 보안관이 이들을 붙잡아 KKK에 넘겨줬을 뿐만 아니라 순회판사마저 KKK 모임에 즐겨 참석하던 사람이었다. 혐의자들은 3∼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두 형기 만료 전에 석방됐다. 1988년 앨런 파커 감독이 이를 ‘미시시피 버닝’(진 해크먼, 윌렘 대포 주연)이란 영화로 만들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