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를 조작하고 관련자들과 입을 맞춰 100억 원대 자산의 회사를 통째로 삼키려던 사기극이 검찰의 집요한 수사로 탄로가 났다.
경기 수원시에 지상 10층, 지하 4층의 쇼핑몰 건설을 추진하던 ㈜아이벨의 대주주 정모 씨는 2001년 1월 자금난을 겪다가 김모 씨를 공동 대표로 선임했다. 정 씨는 김 씨가 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김 씨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2003년 8월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해임에 불만을 품은 김 씨는 사기극을 꾸미기 시작했다. 김 씨는 정 씨의 인감을 미리 백지에 찍은 뒤 ‘정 씨가 채무를 갚지 못하면 아이벨 주식을 모두 ㈜청일산업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허위 각서를 만들었다. 청일산업은 김 씨가 실질적인 소유주로, 정 씨와는 아무런 채권 채무 관계가 없는 회사.
김 씨는 이렇게 해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100억 원대 회사를 손에 넣었다. 정 씨는 김 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수사의 쟁점은 각서의 위조 여부. 김 씨의 꼬임에 넘어간 아이벨 직원 5, 6명은 모두 정 씨가 각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을 봤다며 김 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다.
검찰은 김 씨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정 씨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다. 서울고검은 재기수사명령을 내렸고, 서울중앙지검 석동현(石東炫) 형사1부장이 직접 사건을 조사했다. 검찰의 계속된 수사에 김 씨에게 회유된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그중 2명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 한 번 무혐의 결정이 내려지면 결과가 바뀌기 힘든데 이번에는 집요한 수사로 진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주범인 김 씨는 홍콩으로 도주했고 공범인 유 씨 등 2명은 최근 구속됐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