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이 1940년 중동부 유럽 지역의 유대인 200만 명을 소련으로 추방하려 했으나 소련 중앙정부가 거부하는 바람에 추방 대신 학살로 유대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사학자 파벨 폴리안 씨는 14일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기고한 글에서 “나치는 당시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에 살던 유대인 200만 명을 소련 영토인 우크라이나 지역에 보내려 했으나 소련 정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폴리안 씨는 최근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편지를 근거로 들었다.
1940년 2월 9일 발송된 이 편지는 소련의 이주·정착 담당관이던 예브게니 체크메니요프가 외무장관 비야체슬라프 몰로토프에게 보낸 것.
체크메니요프는 이 편지에서 유대인의 소련 이주를 허용해 달라는 독일 측의 요청을 보고하면서 모스크바의 지침을 요구했다. 그는 “이미 러시아에도 유대인이 매우 많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곁들였다. 몰로토프 장관은 결국 독일의 요청을 거부했다.
폴리안 씨의 주장에 따르면 나치 독일은 당초 유대인들을 나치 점령지역 밖으로 추방할 계획이었다. 상호불가침조약이 체결돼 있던 소련의 영토나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 섬 등이 추방지로 검토됐으나 소련 정부의 거부 등으로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나치는 유대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학살을 선택했다는 것. 당시 소련 정부가 유대인들을 받아들였다면 유럽 6개 지역의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자행된 끔찍한 학살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폴리안 씨의 주장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