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안이 공전하고 있다.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4개국(G4)이 상임이사국을 노려 ‘안보리 확대 결의안’ 제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 이탈리아, 파키스탄, 아르헨티나와 같은 인접국들의 저항이 거세다. 중국도 안보리 확대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아프리카는 결의안 상정을 늦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G4 국가들은 회원국 설득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인접국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다 거부권을 보유한 기존 상임이사국들도 소극적이어서 성공 전망은 어둡다. 프랑스는 결의안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이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을 내다본 외교적 제스처로 봐야 할 것이다.
이웃 나라가 상임이사국이 되면 국제무대 발언권에서 격차가 생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접국들이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독일의 관계를 감안하면 충돌 소지가 많은 국가가 추가로 상임이사국에 포함되는 것을 꺼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상임이사국 확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가 일본인이어서가 아니다. 유엔의 힘을 키우려면 안보리의 개혁이 필요하고, 상임이사국 확대는 이를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강대국들이 협조해 현대 세계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기구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현대 세계’란 실은 개발도상 지역에 집중돼 있다. 선진공업국 간의 관계가 문제가 되면 G7(선진 7개국)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유럽 국가 간의 문제라면 유엔보다 유럽연합(EU)이 더 적절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는 북한의 핵개발, 대만해협 대립, 한일 일중 관계의 긴장, 한미동맹의 동요 등 많은 과제가 있지만 유엔을 통한 군사협력이나 경제협력에 기댈 필요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또는 카리브 해 연안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연합(AU)과 같은 지역기구를 갖고 있어도 그 기구가 지역 분쟁에 대응하거나 경제정책을 조정하는 힘은 현저히 제한돼 있다.
중동이나 남아시아는 지역기구 자체가 매우 약하다. 유엔의 역할이 가장 큰 곳은 앞이 보이지 않는 내전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지역인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내정 불안과 분쟁이 국제정치 전체를 뒤흔들 위협 요인이 된다는 사고는 9·11테러 이후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콩고 내전이나 스리랑카 내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 지역의 분쟁이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극단적인 정권이 들어서도 방치돼 왔던 것이다.
유엔 개혁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일본에서는 ‘유엔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의 연합국을 주체로 만들어진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2차 대전 종결 때는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개발도상국들이 지금도 여전히 안보리에서는 극히 제한된 역할밖에 못하고, 상임이사국도 없는 상태다.
안보리 개혁은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충족시키기 위한 개혁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개발도상국을 주요 활동대상으로 삼는 유엔이 개발도상국의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국제정치에서 어떤 형태의 유엔이 바람직한가의 관점에서 안보리 개혁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