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나흘간 가수 손호영 씨의 팬들로부터 수백 통의 e메일을 받았다. 팩스도 매일 수백 장 쏟아졌고 전화도 하루 종일 울려댔다. 대부분 정중한 표현이었지만, 개중에는 “당신의 신상을 다 알고 있다”는 협박성 글도 있었다.
기자가 13일자 A20면에 보도한 ‘연예인 국적 이중 잣대’ 제하의 기사에서 손 씨를 언급한 데 대한 항의였다. ‘국적법’ 이슈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특집의 일부였던 이 기사는 연예인들의 국적 문제를 무조건 병역의무 이행 여부와 동일시하는 일부 누리꾼(네티즌)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기사에 대한 손 씨 팬들의 이해는 달랐다. 팬들은 기사 중 ‘손호영 씨가 이중국적 상태에서 한국국적을 정리한 사실이 알려지자’라는 대목의 설명이 불충분해 오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손 씨의 경우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없는 미국 시민권자였음에도 행정착오로 이중국적자로 잘못 분류돼 정정했을 뿐, 이중국적을 유지하다 한쪽을 택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게 팬들의 주장이었다.
기자가 “행정절차상 ‘정정’이라 하더라도 손 씨가 이중국적 상태에서 한국 국적을 정리한 것은 사실이며 손씨 스스로도 5월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중학생 때 이후 이중국적자인 줄 안 채 살아왔다고 밝히지 않았느냐”고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팬들은 “손 씨의 경우 국적 포기도 아니고 병역과는 무관한데도 때마침 지도층 인사 자녀들의 국적포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 부류로 취급돼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팬은 “내가 마치 그 일을 당한 것처럼 억울한 팬심(心)을 알지 못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적이나 병역 문제가 불거지면 본인 해명은 아랑곳없이 융단폭격을 퍼붓는 누리꾼들과, 한 가수의 ‘병역 기피 오명’을 벗겨주기 위해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는 팬들. 상반돼 보이는 이 두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의 내면에 혼재된 한 얼굴인지 모른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