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작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을 리메이크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사진 제공 래핑보아
리메이크는 원작과 비교되는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 하나 재미있는 건,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경우 다음과 같은 품평을 내리면 십중팔구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원작이 영화사에 던졌던 충격적 의미는 퇴색됐다. 하지만 시각효과와 비주얼은 한층 생생하고 끔찍하다.’ 이 해석은 공포영화의 고전인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1974년)을 리메이크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은 이랬다. 관객의 숨통을 차츰차츰 조여들어가는 논리적인 방법 대신, 너무나 별안간 나타난 살인마가 전기톱을 들고 아무런 이유나 동기 없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썰어버렸다. 그 느닷없음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와 삶의 본질을 꿰뚫는 요소로 인정받았다.
30년 만에 만들어진 리메이크는 이런 부조리함이 줄어들어 훨씬 세련되고 만질만질해졌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 리메이크는 원작과의 비교가 어쩌고 영화사적 의의가 어쩌고를 논하기 전에, 일단 무지하게 무섭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 주의 시골도로를 달리던 다섯 남녀는 실성한 듯 걸어가는 한 여자를 차에 태우게 된다. 여자는 갑자기 권총을 꺼내 자신의 입안에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긴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외딴 마을로 들어간 일행은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마을엔 사람을 마구 살해해 그 얼굴 가죽을 쓰고 다니는 살인마 ‘레더 페이스(leather face·가죽 얼굴)’가 있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무지막지한 제목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체로 사실 다 된 것이다. 텍사스 주의 고립무원 시골에 나타난 살인마가 전기톱을 들고 97분 내내 희생자(혹은 관객)들을 쫓아다니는, 그 자체로 다 된 것이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제발 멈췄으면…’ 하고 관객이 지긋지긋해하는 순간, 이 영화는 이런저런 의미를 떠나 ‘좋은’ 공포영화다.
전기톱을 간발의 차로 피해 다니는 여주인공 에린(제시카 비엘)의 아찔한 탱크톱, 그 이상으로 이 리메이크에서 시선을 붙잡는 요소는 텍사스란 공간 자체가 갖는 공포의 ‘질감’이다. 밤을 강조했던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 속 엽기 살해행각과 추격전은 대부분 대명천지 아래서 이뤄진다. 원작에 이어 다시 촬영감독을 맡은 대니얼 펄의 카메라는 텍사스 황야의 뿌연 먼지와 누런 토양, 내리쬐는 햇빛 속에다 뭔가 무심해서 섬뜩한, 살기(殺氣)에 가까운 캐릭터를 집어넣었다.
원작은 정치적 사회적 해석을 낳기도 했다. 살인마를 ‘키우는’ 미친 가족은 1970년대 미국의 붕괴하는 가족문화를 빗댄 것으로도 이해됐다. 돼지 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도축’되어 갈고리에 척 걸리는 인간의 모습은 땅에 떨어진 휴머니즘의 고발로도 읽혔다.
리메이크는 ‘그루지’ ‘링’ 등 일본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하는 할리우드의 최근 유행과 달리, 무척 미국적인 공포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색다르다. 엄청나게 넓다는 사실 자체가 곧 공포인 텍사스 황무지를 배경으로, 기계문명과 개척(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낼 때 사용하므로)의 상징도구인 전기톱을 휘두르는 살인마. 순도 100%의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공포 에너지로 관객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 영화는 좁은 다락방이나 이불 속에 나타나 손톱을 치켜세우는 일본 공포영화 속 여자귀신과는 ‘체급’이 다른 것이다. 공포도 초콜릿 같은 걸까.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면, 일단 무지막지하게 크니….
뮤직비디오와 CF를 연출해 온 마커스 니스펠 감독의 데뷔작. 16일 개봉.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