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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음악 기행]이탈리아 로마

입력 | 2005-06-17 08:47:00

베드로 성당 위에서 내려다본 로마 전경. 타원형 베드로 광장에서 테베레 강으로 뻗은 길 끝 왼쪽에 원통 스타일의 ‘거룩한 천사의 성’이 보인다. 사진 정태남 씨


캄피돌리오 언덕 남동쪽으로 펼쳐진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마치 고대 로마 건축의 공동 묘지인 것처럼 돌무더기가 널려 있지만, 2000년 전에는 로마 세계의 화려한 중심가였다. 그 너머 보이는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에 세워진 로마 사상 최대의 원형 극장. 지금은 3분의 1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당시 로마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던 건축이었다.

콜로세움이 세워진 지 거의 60년이 지난 뒤, 캄피돌리오 언덕 북서쪽 테베레 강변에 또 다른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후대 황제를 위해 거대한 영묘를 건설한 것이다. 로마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그는 예술과 문화에 심취해 영토 확장보다 정복된 땅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었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에서 푸치니 오페라 무대로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이탈리아는 1870년 통일될 때까지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거나 교황과 유럽 각국 간의 갈등으로 시달려 왔다.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는 로마의 역사와 함께 기능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방어용 보루, 10세기에는 바티칸 궁전을 방어하는 요새가 됐다. 12세기에는 ‘거룩한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성은 1527년 독일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할 때 교황의 피신처가 됐고, 그 후에는 정치범들을 수감하거나 처형하던 감옥이 되기도 했다.

이 성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3막의 무대가 된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가 1800년 격변하는 로마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쓴 희곡 ‘라 토스카’를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오페라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얽히는 원작의 내용이 많이 사라졌지만 사랑의 비극은 훨씬 더 극적으로 처리됐고 극의 짜임새와 음악이 절묘하게 맞물렸다.

오페라의 여주인공 토스카는 노래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순수한 가수. 그녀의 연인 화가 카바라도시는 친(親)프랑스파이며 공화정을 부르짖는 혁명가다. 한편 사르두의 원작에 등장하는 나폴리왕 페르디난도 4세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는 무능한 왕을 제치고 실권을 잡는다. 왕비는 당시 자유의 상징이던 나폴레옹 세력을 견제하면서, 국내 친프랑스파를 탄압하다가 1798년 나폴리가 프랑스군에 함락되자 시칠리아로 도망간다.

그 사이 로마와 나폴리에는 공화정이 선포되나 얼마 후 프랑스가 패하자 나폴리와 로마 공화국이 무너지고, 다시 권력을 잡은 왕비는 무자비한 복수극을 벌인다. 로마 총경감 스카르피아는 바로 그녀의 하수인이다.

1800년 6월 14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이탈리아 북부 마렝고에서 격돌하는데, 전투 초기에는 오스트리아가 압도해 로마에는 오스트리아가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프랑스가 역전승을 거둔다.

오페라 ‘토스카’는 프랑스가 패한 줄 알고 성당지기가 기뻐하며 성당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오페라의 시간 배경은 전황이 전해진 6월 17일 낮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인데, 줄거리는 3명의 주역들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오페라에서 압권을 이루는 아리아는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 화가 카바라도시는 연인 토스카와의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먼동이 트는 로마의 하늘을 배경으로 이 아리아를 부른 뒤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의 유적. 멀리 콜로세움이 보인다.

○성 굽어보는 미카엘 천사상… 제국의 흥망사 간직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로마의 흥망사를 지켜본 테베레 강은 유유히 흐른다. 불 밝혀진 미카엘 천사상은 신의 은총을 구하는 자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별빛 어리는 강 위에 던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가 ‘거룩한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된 것은 옛 전설 덕분이다. 서기 50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로마를 휩쓸던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하여 기도하던 중 영묘의 꼭대기에 서서 칼집에 칼을 넣고 있는 미카엘 천사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즉 신의 은총이 내려졌다는 뜻이다. 그 후 이를 기념하여 미카엘 천사의 형상이 세워졌다.

오늘날 거룩한 천사의 성 안에는 교황의 방과 감옥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날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지키고 내실을 기했던 문화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묘소가 후손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연인의 총살형에 충격…토스카, 성벽아래 투신▼

토스카의 무대가 된 ‘거룩한 천사의 성’ 야경. 이 성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였다.

오페라 토스카: 카라바도시가 탈옥한 정치범을 성당 안에 숨기자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토스카는 그날 저녁 스카르피아의 집무실이 있는 파르네제 궁에서 열린 승리 축하 음악회에서 노래한다. 카바라도시는 탈옥범 은닉 혐의로 연행돼 고문당한다. 그때 프랑스가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급해진 스카르피아는 그를 처형하도록 한다.

토스카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스카르피아의 성적(性的) 유혹을 받아들이고, 스카르피아는 그 대가로 두 연인에게 통행증을 써준 뒤 심복에게 카바라도시를 가짜로 총살하라는 듯한 눈짓을 한다. 그 사이 토스카는 집무실 책상 위의 칼을 들고 있다가 스카르피아가 다가오자 그의 가슴에 꽂는다. 다음날 새벽, 토스카는 사형을 기다리는 카바라도시에게 달려가 죽는 시늉만하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총성이 울리고 카바라도시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토스카는 속았음을 알고 절규한다. 그녀는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오자 성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