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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에서…드라마에서…日常이 돼버린 청년실업

입력 | 2005-06-18 03:07:00



“우우우 놀자 우우우 놀자/지겨워도 놀 수밖에 없잖아 일이 없잖아/우우우 놀자 우우우 놀자/이러다가 늙어서도 놀까봐 걱정 되잖아.”

최근 각종 가요차트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혼성듀엣 ‘더 자두’의 흥겨운 댄스곡 ‘놀자’의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삼류여고 졸업하고 2년째 백수 신세인 여자와 일류대를 나와도 빈털터리 신세인 남자가 이래저래 놀 수밖에 없으니 ‘내친 김에 계속 놀아 버리자 웃어 버리자’고 말한다.

2인조 남성 신인 댄스그룹 ‘카사 앤 노바’의 ‘놀아줘’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청년 백수가 됐다고 힘들어하지 말고 가슴을 쫙 펴고 놀라고 말한다.

“왜 힘들어 가슴을 쫙 펴고 살아봐요/자 웃어요 외로울 땐 나를 봐요 날 보러 와주세요 워∼.”

청년실업 문제는 대중문화에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중시하는 록이나 힙합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댄스곡에서도 흥겨운 리듬을 타고 술술 흘러나온다. 청년실업이 만연하고 장기화되면서 일상의 거의 모든 문화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 청년실업을 하루빨리 탈피해야 할 사회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 껴안고 살아야 할 일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어떤 형태든 대중음악은 사회 단면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최근 댄스곡들에서도 만성화된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피로감이 배어나오고 있다”면서 “‘놀자’나 ‘놀아줘’는 그런 우울한 피로감을 역설적 메시지를 통해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실업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보는 인식은 TV드라마와 영화 등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끝난 MBC 드라마 ‘신입사원’은 실업의 비애와 비정규직 같은 소재를 명랑만화와 같은 분위기로 다뤘다. 삼류대 체육학과 출신의 주인공이 실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뒤 똑똑하다는 회사원들을 물리치고 사내 최고 직원이 됨으로써 실업자들의 위축되고 억압된 심리를 통쾌하게 풀어준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 ‘위대한 유산’, ‘똥개’에 이어 최근 개봉한 ‘역전의 명수’ 등 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 속 주인공들도 모두 청년 백수들이다.

이 같은 ‘백수찬가’는 저성장 고실업 사회에 본격 진입한 한국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일본의 장기불황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Freeter)족’을 낳았지만 한국의 청년실업자들은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많다보니 실업은 생계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적 자괴감의 문제”라며 “‘놀자’류의 인식은 실업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런 심리적 박탈감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런 인식은 장기적 실업상태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은둔형 외톨이’식의 자폐증세를 보이는 것보다는 정신건강상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이런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근로의욕의 저하를 부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은 “실업상태를 정상적 상황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점차 취업 의욕을 상실해 ‘니트(NEET·학교에 다니지 않고, 직업이 없으며, 직업훈련에도 참가하지 않는 15∼34세 미혼자)족’의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